내향인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독자들로부터 의외로 많이 받는 질문이 있었다. 혼자 있을 땐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냐는 것.
생각해 보니 나의 자유 시간에 타인이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때로 친한 지인들을 만나긴 하지만 내가 먼저 자리를 주선하는 일은 거의 없고 피가 섞인 가족도 일 년에 두세 번 볼까 말까 하다. 사회적인 요구나 업무적으로 결부된 일이 아닌 이상 사적인 시간에는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안 만나고 싶고, 굳이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적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람을 만나야 인맥도 넓어지고 기회도 생긴다고 하는데, 굶어 죽을 팔자인지 외향인 척하며 억지 만남을 갖는 게 너무나 버겁다.
홀로 있을 때 집안일을 한다. 결벽증 까지는 아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안을 쓸고 닦는다. 설거지나 빨래도 절대 미루는 법이 없다. 원래부터 청소에 취미가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극심한 무기력증을 겪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아주 사소한 집안 일도 미루지 않고 제때제때 해치우며 혹시라도 재발할 수 있는 무기력증을 원천봉쇄 한다.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 더럽게 풀리지 않는 데, 집이라도 깨끗해야 좋은 운이 들어올 거란 미신 같은 믿음도 있다. 그래서 신발장마저도 늘 깨끗하게 유지한다. 얼마 전 이사를 오고 나서 몬스테라를 키우기 시작했는 데 때마다 물을 뿌려주고 햇빛을 적절히 쬐여주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집안일을 다 했다면 운동을 간다. 헬스장에 다니고 있는 데 두 가지 이유로 다닌다. 정신이 우울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억지로 몸을 굴리고, 어찌 됐건 보이는 직업을 가졌으니 좀 더 큰 몸을 가지려고 운동을 간다. 운동을 시작한 지는 이제 반년 정도가 넘어가는데 PT 선생님 없이 혼자 하는 운동이라 그런지 아직 몸에 큰 변화는 모르겠다. 타고나길 운동에 취미가 없는 몸치라 그런지 아무리 해도 재미는 없다. 그래도 그냥 한다. 안 하고 집에 있으면 뭐 할 건데. 괜히 쳐지기나 하지. 러닝머신이라도 뛰고 오면 불필요한 지방 몇 그람이라도 빠졌겠지 하면서.
걷는 것은 그나마 할만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보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한강에도 가고 공원에도 간다. 자주 가진 않지만 산도 좋아한다.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자연에서 받는 치유가 크다. 먹고사는 일만 아니면 진심 산속으로 들어가 살고 싶다. 예전에 남양주에 산속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건강 회복은 물론이고 삶의 만족도도 가장 높았다. 생존을 위해 가당치도 않는 액수의 월세를 내가며 서울에 붙어있지만 나는 언제고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향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자연이 품어줌을 느끼게 해 줬던 남양주가 내 마음의 고향이다.
어느 정도 걸었으면 카페에 간다. 커피는 내가 좋아하는 기호 식품이다. 담배는 끊었고 술자리가 있지 않는 한 혼술도 하는 일이 없다. 나는 혼술을 하면 그리 처량해지는 것 같더라. 혼자 카페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럴 때에나 겨우 잠깐이나마 멍을 때리며 뇌가 쉰다. 스타벅스나 투썸 같이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운 카페는 질색이다. 소음에 혼이 빠져나가고 그 사이에 짜증이 파고든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인상 좋은 중년 사장님이 하는 카페 같은 곳이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래도 나를 알아봐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부담스러워서 발 길을 끊을지도 모르니까. 커피 몇 모금에 7000원에 가까운 돈을 내는 것이 매번 속이 쓰리지만, 가끔은 이런 호사도 누린다.
카페인 충전도 했다 싶으면 대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과부하 일 때에는 혼자 코인노래방에 간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나의 은밀한 취미이다. 노래를 부르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리고 즐겁다. 노래를 할 때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끼지만 업을 삼기에는 타고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즐겁다. 나의 잡스러운 음악 취향을 모두 쏟아내듯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실컷 부르고 나면 진도 빠지고 기분도 환기가 된다.
30대 후반 내향인 남자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혼자 있는 시간은 타인과의 만남과 달리 에너지 누수를 막을 순 있지만, 의외로 홀로 보내는 시간이 퍽 즐겁거나 흠뻑 충전되는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무감하고 건조한 일상이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 견디려 발버둥 치며 사는 것, 그게 현재 내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