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택시를 탄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훨씬 싸기도 하지만 이 대중교통들을 탈 때에는 누군가 내게 말 걸 일이 없어 속 편하다. 피치 못하게 약속 시간에 너무 늦었거나 버스나 지하철이 끊긴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는다. 택시를 부를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되뇐다.
“제발 나한테 말 걸지 않는 기사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지만 내 희망사항은 그저 희망사항으로 끝날 때가 있다. 기사님이 조용히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출발만 해도 '됐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목적지 재확인만 하고 아무 말 없이 운전에 집중하시는 분이라면 속으로 만세를 부른다.
이런 분들과 달리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는 기사님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입을 여는 순간, 나의 노동도 같이 시작된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진짜 어이가 없어요."
"제가 택시만 30년을 했는데..."
"우리 아들이 서울대 나와서 지금 삼성 임원인데..."
나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영혼 없는 맞장구’를 자동 반복 모드로 돌린다.
“아, 그러시군요.”
“네네"
이 만능 대답들은 내가 사회에서 습득한 생존 기술이다. 감정도 의견도 담겨있지 않다. 최대한 중립적인 톤으로, 마치 ‘나는 듣고는 있지만 당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전략은 종종 역효과를 낸다.
나의 “네~ 그러시죠”가 기사님에겐 마치 ‘더 말해주세요!’라는 기폭제가 되는 걸까. 갑자기 기사님의 톤이 올라가고, 말속도가 빨라진다. 가끔 손동작까지 곁들여지는 걸 강연 모드에 빠지는 기사님도 있다.
“기사님, 죄송한데 말 좀 걸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연신 어설픈 웃음만 짓는 나.
택시 안 대화가 가장 고통으로 치닫는 순간은 단연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이다. 기사님 정치적 견해가 나와 같건 다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사람을 긴장시키고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열망이 담긴 경우가 많다. 기사님이 열변에 맞받아칠 열정도 맞장구칠 여력도 없이 나의 표정은 썩어가기 시작한다.
“ㅇㅇㅇ 이 자식 하는 꼴 보면 진짜 가관이라니까요? 옛날엔 안 그랬는데 나이를 먹고 정신이 회까닥 한 건지”
“아 네...”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전환될 까 싶어 차 창문을 내린다. 창밖의 풍경을 보며 속으로 계산한다.
‘여기서 내려서 지하철 탈까? 귀찮은 데 그냥 가자."
이렇게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감정 없는 ‘네네, 그러시죠’ 로봇이 된다. 내향인의 택시 탑승기는 이렇듯 매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