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직장인이던 시절이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내내 오로지 점심시간과 퇴근시간만을 기다리는 노동자. "퇴사할게요" 소리를 하루에도 수천번 참고 묵묵히 일하는 K-직장인. 직업 군을 막론하고 남의 돈 버는 일이 어디 쉽겠냐만은 극내향인인 나에게 직장 생활은 남들에 비해 갑절은 더 힘들게 느껴졌다.
나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인수와 비례해서 기가 빨리는데 회사라는 곳은 주 5일 내내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사람들과 날을 세우며 일을 하는 건 물론, 황금 같은 점심시간마저도 모두와 함께 보내야 하니 내향인의 연료 경고등엔 늘 사이렌이 울렸다.
퇴근 시간엔1초라도 빨리 회사에서 도망치는 것이 미션인데 이때 눈치 없는 동료가 같이 퇴근을 하자고 한다던가, 느닷없이 상사가 선심 쓰듯 회식 자리까지 만들면 말 그대로 뭐 되는 날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와 관련해서 전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극심한 콜포비아 (Call Phobia: 전화통화 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인 내게 통화 업무는 벌칙수행과 같았다. 신입 시절에 거래처에 영업 목적으로 전화를 걸라는 지시를 받고 통화를 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공황장애가 와서 냅다 비상구로 뛰어갔던 적도 있다. 전화 한 통 했다고 공황장애가 온 것을 알면 사람들이 날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싶었다.
현재 나는 프리랜서이다. 다양한 직업을 하고 있는 n잡러이지만 주된 업무는 방송 진행이다. 내향인이면서도 내면에 숨겨진 끼가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데 아마 내가 그런 부류일지도 모르겠다. 방송진행일은 의외로 내향인인 내게 찰떡인 부분이 많다. 하루 8시간을 다른 직원들과 내내 붙어서 일하는 사무직과 달리 방송일은 주어진 시간 동안 진행만 하고 나면 바로 집으로 도망칠 수 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필요에 의해서라도 사람들과 꽤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나는 무대 건너편 또는 카메라 너머의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 많은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다.
핵인싸가 할 법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내향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하진 않더라. 오히려 이 일을 할수록 더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나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수록 작가만큼 나와 잘 맞는 직업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을 대면하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 작업이 가능한 것은 물론 내가 직접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내가 써놓은 글이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서 출간 작가가 되어서 그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또 한 번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