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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딱 망한 지 15년 후 + 에필로그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


첫 에피소드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우리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화려한 해피앤딩도, 역경을 딛고 눈부시게 재기한 성공 신화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집이 망한 지 어느덧 15년. 그토록 열심히 살았건만 가족들은 여전히 매달 빚쟁이처럼 찾아오는 월세 살이를 벗어나지 못했고, 가게를 하며  빚은 어느새 천 단위가 넘어간다.


홈쇼핑을 나와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나는 매달 50만 원씩 붓고 있던 청년 적금을 깼고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긴급 생활비 대출을 받았. 좋아하던 방송일을 때려치우고 느닷없이 스타트업 월급쟁이로도 살아봤지만 사실상 쫓겨났다.


새벽에는 영어 과외를 한 탕 뛴 후 회사에 출근했고, 퇴근 후엔 졸린 눈을 비비며 매주 브런치에 연재할 글을 썼다. 주말엔 과외 수업이나 간간이 들어오는 광고 모델일이나 방송 진행일을 했다. 다섯 가지 직업을 가지고 발버둥 쳤지만 다섯 평 원룸을 벗어나기란 까마득해 보인다.


많이 유감스럽다.


나를 열렬히 응원해 주신 독자 분들께 누구보다 통쾌한 엔딩을 선사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애써도 삶은 여전히 뜻대로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거짓부렁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지리멸렬했던 지난 15년을 글로 풀어내며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그저 살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노력하고 살아도 인생은 결코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고, 때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잔혹한 현실에 죽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내다 보면, 삶은 멈추지 않고 어디로든 이어진다. 


때로 간절하게 죽고 싶을 만큼 괴롭더라도, 이젠 그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져도 나는 기필코 당신이 오늘을 살아내었으면 한다. 목을 매달았던 나의 아버지도, 약을 털어 넣었던 내 여동생도, 죽을 생각이 일상이었던 나도 결국 죽지 않아서 천운이었으니까.


죽지 않고 살았기에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고 영원히 봉합되지 못할 것 같던 온 가족이 기적처럼 서로를 보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내가 사랑했던 사람보다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이 있어 고된 삶 속에서 때론 웃기도 하며 고비고비를 넘어왔다. 살아냈기에 내가 영원히 놓칠 수 있었던 감사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계속 고될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바보처럼 묵묵히 내 길을 가고 싶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언젠간 내게도 볕 들 날이 오겠지 하는 기대는 많이 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없이는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운의 흐름과 타이밍을 통제하는 것 또한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는 혹여 내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등 뒤를 스쳐갈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다. 나도 출간 작가가 되어 나를 위해 뜨거운 응원을 보내 준 독자 분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또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며 운명에 나를 맡길 뿐이다. 내가 그리는 모습과 전혀 다른 미래가 오더라도 순응하며 살겠다는 다짐뿐이다. 비관도 낙관도 아닌 중간의 지점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10년 후에다섯 평 원룸에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라면 또한 어떻게 하겠는가. 삶을 비관하며 죽을 수는 없으니 받아들여야겠지. 


꿈을 이루지 못해도 나에겐 살아야 이유가 너무나 많다. 나를 태어나게 하고 죽지 않게 지켜준 엄마 아빠, 바라만 봐도 애처로운 동생. 가장 어두운 시기에 등대처럼 나를 지켜준 소중한 친구들과 친척들까지. 사람 때문에 망하고 상처받았지만, 사람 덕분에 지금살아있다.  


세상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미약하게나마 희망이 되리라 믿고 싶다. 이것은 비단 나의 이야기일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혹여 당신이 부자도 아니고 사회적 기준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당신이 살아있는 이 순간, 당신의 존재 자체는 분명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이고 삶의 이유이다.


성공과 희망의 정의가 더는 사회가 만든 개념에 국한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 모두의 성취이자 함께 희망을 그리는 모습이다.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은 그래서 온 마음 다해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그리고 힘들었던 나 자신에게 이제야 소심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동안 살아내느라, 참 애썼다.


에필로그


글은 의 탈출구였습니다. 지난 15년간의 기억이 끔찍하게 고통스러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드러내지 않는 익명의 공간에서 는 누구보다 솔직할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알아봐 주신 여러분께서 전해주신 따뜻한 진심은 죽고 싶던 순간마다 를 지켜주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삶의 아픔을 겪은 독자 분들이 댓글을 통해 각자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어 주실 때, 의 이야기가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가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브런치가 제공하는 기능 중에는 독자 분들이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다 저의 글에 유입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번개탄 자살하는 법', '상간녀 고소 후 자살', '우울증', '망했는데 죽는 법'과 같은 너무나 가슴 아픈 키워드들을 자주 발견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인생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일들에 고뇌하다 죽음마저 생각하게 되셨는지 가슴 아팠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던 저로서는 그 심정을 너무나 알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같은 핑크빛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꼭 죽지 않고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기력한 상태도 좋습니다. 멍한 상태도 좋습니다. 희망을 잃고 잠시 멈춘 상태여도 좋습니다. 그래도 절대 삶을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함께 하루하루를 쌓아나가 봐요. 그렇게 견뎌내다 보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지게 되어있으니까요. 무일푼으로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에 있었던 저희 가족도 어찌 되었건 월셋집이라도 기거할 집이 있고 빚더미라도 하루 두 끼는 먹고살 수 있듯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이라는 이방인에게 여러분이 쏟아 주신 사랑은 너무나 뜨겁고 순수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떠오르는 독자 분들이 너무나 많아 어떤 분부터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여러분의 꾸준한 사랑이 저를 살렸고 성장시켰습니다.


매주 수요일을 기다려 주시고 무한한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 분들.

21주간의 대장정은 여기서 끝납니다.


그러나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더 좋은 소재와 이야기로 돌아올 때까지,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세상의 가장 밝은 곳에서 여러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저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진심을 담아,

머리 숙여 여러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 올림


쫄딱 망한 집 첫째 아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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