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족 창업은 미친 짓이다

가족 창업? 해볼 만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아빠를 10년 넘게 안 보고 살아온 동생이 갑자기 그 인간과 얼굴을 마주하고 일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나와 동생은 아빠가 한 여자랑 두 번이나 바람난 후부터 단 한 번도 안 보고 살았으니까.


미우나 고우나 아빠와 동생은 함께 일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동생은 엄마 아빠의 창업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했고, 엄마 아빠는 동생이 가진 음식 기술이 필요했다. 먹고사는 일이란 이토록 더럽고 치사한 것이다. 천륜이란 건 이렇게 질기고 지긋지긋한 것이다.


엄마 아빠와 동생은 강원도로 내려갔다. 나는 방송일을 해야 하니 서울에 홀로 남았다.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최소 비용으로 용케 가게를 차렸다. 여동생은 사장인 동시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엄마는 동생의 주방 보조를 하고, 아빠는 홀써빙을 하는 것으로 업무 분장이 나눠졌다.


수익 배분에 있어서 세 사람은 경제 공동체가 되었다. 셋 다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일하다 보니 정기적으로 각자 수익을 배분하는 일 없이, 그냥 같이 벌어먹고 사는 형태가 되었다. 나중에 가게를 팔고 권리금을 받게 되면 분배 비율에 대해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한참 후의 일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하지 않았다. 


처음 가게를 오픈하면 적어도 초반 6개월은 돈 까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던데 가게는 이제 막 오픈한 것 치고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가게의 네이버 리뷰에 나와있는 평점과 평가를 보더라도 동생이 내놓는 음식 맛이 좋고, 홀써빙 하는 아빠가 친절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피지는 않았다. 관광지 장사다 보니 여름 성수기에 반짝 벌고 기나긴 비수기를 견뎌야 했다. 가족들이 사는 집과 운영 중인 가게 양쪽에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 하고 고물가 시대에 가게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용 또한 많이 들다 보니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결국 지난겨울, 엄마가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금을 전부 팔아야 했고 큰외삼촌 집에서 빚을 얻어야 했다.


돈 때문에 불안한 것은 세 사람 모두 매한가지겠지만 이들을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이제 서른 살 먹은 어린 사장인 동생과 왕년에 내가 사장 입네 하는 아빠의 갈등이었다. 가게 운영 방식부터 손님 응대 방법까지 이 부녀는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제삼자인 내가 나중에 들어보면 아빠가 맞을 때도 있고, 동생이 맞을 때도 있어서 일방적으로  사람만 잘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고 동생이고 서로에 대한 불편함을 엄마에게 쏟아붓다 보니 서로 한치도 안 져주는 부녀 사이에서 엄마는 얘 눈치 보랴 쟤 달래랴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엄마는 가뜩이나 우울이 깊은 동생이 가게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또 약이라도 털어 넣고 죽는다고 할까 봐 매일이 살얼음 판이었고, 매주 수요일 휴무가 되면 아빠 멱살을 끌고 카페로 나가 정신교육을 시키기 바빴다. 나는 수요일 저녁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한 주간 엄마의 애로사항을 듣고 그 노고를 알아주는 것 밖에는 도와줄 게 없었다.


가게를 한 지 1년쯤 지나니 서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며 예전보다야 잡음이 적어졌다. 동생은 여전히 아빠가 못마땅하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며 지켜보는 중이고, 아빠는 여전히 욱하는 마음에 돌발상황을 만드는 때가 있어 엄마가 자중시키기 바쁘다.


가족이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힘들기도 하지만, 남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때도 있다. 동생이 우울이 심각하거나 디스크로 힘들 때는 엄마 아빠가 동생을 대신해 전적으로 가게 운영을 맡아주고, 가끔 엄마가 아플 때면 가게를 쉬는 경우도 있으니 남의 밑에서 일한다면 누릴 수 없는 특혜 또한 있다. 환갑이 넘은 엄마 아빠도 가게를 하면서 중노동을 하는 게 서글플 만도 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일하지 않아도 되니 심간은 편할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대판 싸운 다음 날에도, 아빠와 동생이 신경전을 벌인 다음 날에도 가게는 언제나 열려있다. 가족 서로가 더럽게 꼴 보기 싫은 날에도, 옆에만 있어도 소름이 쫙 끼치는 날에도 세 사람은 늘 가게에 있다. 우리가 서로 아웅다웅하는 동안, 어느덧 가게는 어떤 순간에도 세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이 가족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