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악에 받친 나는 심심하면 이런 이야기를하곤 했다. 아버지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사업을 말아먹고 가족들을 개고생 시킨 사람, 일생 동안 세 번의 불륜을 저지르며 온 가족을 환멸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린 사람. 대학 병원 정신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도 내가 파괴하고 싶었던 것은 나 자신과 애비 오로지 둘 뿐이었다.
파괴하고 싶어도 파괴할 수 없었던 존재가 바로 애비였다. 어찌 되었건 그 인간이 벌어야 온 가족 굶지 않고 나랑 내 동생이 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었으니까. 애비와 쿨하게 이별하려면 각자 흩어져 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딴 건 수중에 없었으니 대가리가 깨져도 모두가 한 집에 살아야 했다.
언제나 한 집에 살았지만 10년 동안 애비의 얼굴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의 주거 규칙은 한 집에 살되 공용 공간에 나올 수 없고 서로의 인기척이 들리면 서로를 피하며 숨바꼭질하듯 지내는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 애비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분노가 차올라 정신 줄을 놔버릴 것만 같았다.
애비는 그래도 새끼들이 보고 싶었다. 하루는 엄마를 붙잡고 애들 보고 싶다고 오열을 했다고 하니 말이다.
"진작에 잘하지 이 미친 인간아"
엄마는 냅다 욕을 후려치면서도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그 남자의 초라한 중년이 짠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수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버지라는 대상을 향한 용암 같은 분노는 결국 나를 태우고 우울에 생사를 오가게 만들었다.
그저 죽일 놈이었던 애비를 달리 보게 된 것은 누군가가 내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였다.
"야 네 아빠가 진짜 나쁜 새끼면 진작에 화냥년이랑 살림 차리고 나갔지, 자식새끼들이 얼굴도 안 보여주는 집구석에서 온갖 3D 업종 투잡 쓰리잡 하면서 니들 먹이고 가르치겠냐?"
맞는 말이었다. 세기의 사랑을 하느라 마누라랑 자식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으니 상간녀의 품으로 줄행랑을 치는 것이 수순일법도 한데, 애비는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붙어살았다. 죄진 놈이니 죗값은 돈으로라도 치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애비에게 "왕년에 내가 사장이었네" 따위의 허세는 옛날 옛적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과일 가게 행상, 생선 가게 행상, 배달, 보험, 꽃가게 알바, 함바집 종업원 등 오로지 몸을 갈아 넣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벌어서 결국 11년 만에 내 대학 졸업까지 시켰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기적을 만든 것도 그였다.
그럼에도, 절대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상간녀의 가게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애비의 모습은 악마와 다름없었으니까.
동생과 엄마 아빠가 가족 창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24시간 중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는 사사건건 부딪히며 일해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아빠건 동생이건 어느 쪽이건 먹고살 것이 풍족했다면 굳이 그토록 증오하는 상대와 손을 잡고 일하려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이번에도 10년 전과 똑같았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또 서로를 어거지로 붙들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오픈했고 나는 동생의 가게를 찾아 강원도로 내려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대뜸 보인 것은 어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 돋보기 같은 안경을 끼고도 도통 잘 보이지 않는지 핸드폰 액정을 코 앞까지 두고 뭔가를 보던 노인.
그게 내 아빠였다.
일생 아빠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란 늘 기깔 나게 옷을 빼입고 누구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으로 유명했던 양반인데, 10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내가 마주한 것은 느닷없이 등장한 노인 한 명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 너무나 낯선 모습을 하고 있어 인지부조화가 왔고 나는 내 머리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지각조차 되지 않았을 때 눈물샘이 먼저 반응했다.
"어 왔니?"
나를 10년 만에 본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난 애써 못 본 척 그를 지나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때가 기점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엄마와 동생도 아빠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그가 가장으로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세월을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물론 잘못도 했지만 그래도 죽어라 일해서 니들 먹여 살리고 가르쳤잖아"
엄마가 그렇게 아빠를 품지 않았다면 나도 동생도 절대 아빠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정말 보살이 틀림없다.
한 순간에 노인이 되어버린 아빠를 본 것은 내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아빠는 이젠 어느 순간에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빠와 해묵은 감정을 풀지 못하고 누군가가 먼저 죽어버리면 내가 관짝에 들어갈 때까지 너무나 큰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용서하자"
엄마와 동생에게 말했다. 그게 우리가 더 편해지는 길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끝없는 고문을 가하는 일이다.
살면서 돈 고생 사람 고생 안 해본 고생이 없지만 내가 겪은 최악의 고통은 바로 가정의 불화였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였다.
이젠 자유롭고 싶어졌다. 아빠도 동생도 다 한 번씩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고 나도 만성 자살사고에 시달리는 만큼 더는 죽음이 우리에게 먼 일도 아니었다. 죽음이 느닷없이 내 삶에 치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살아있을 때 꼭 이 관계를 풀고 싶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도 이 나이를 먹으니 아빠가 어떤 성장 배경과 심리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우리 할머니는 딸을 여섯을 낳고도 첫째, 둘째를 6.25 전쟁통에 잃었다. 그러다 마흔이 넘어 어렵게 낳은 아들이 바로 우리 아빠였다. 그런데 아빠는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를 여의었고, 가장이 된 할머니는 돈을 버느라 실질적으로 아빠를 키우지 못했다.나이 차가 훌쩍 나는 고모들은 이미 시집을 가서 자기 가정 꾸리기도 벅찼으니 아빠는 늘 혼자 남겨진 존재였다. 밥은 굶지 않았지만 늘 혼자였다. 부모의 보살핌도 형제의 따스함도 모른 체 혼자 자랐으니 늘 허기지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 와중에 결혼을 하고 우연찮게 사업으로 돈을 만지게 되니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실수를 범하게되었을 것이다.
기적이었다. 어떻게든 아빠를 응징하고 싶었던내가 그를 용서하고 그가 잘못했던 배경까지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어느덧아빠의 생일이 다가왔다. 난생처음으로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살면서 했던 실수들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가장으로서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죽을 만큼 노력해서 이 가정을 지켜준 노고에 고맙다는 내용을 A4 용지 네 장에 담았다. 없는 돈을 탈탈 털어 한정식도 사줬고 동생과 돈을 모아 용돈도 전달했다.
"내가 별 볼일 없는 놈인데, 고맙다"
아빠는 고량주 몇 잔을 걸치고 용기를 내어 우리에게 고백했다.
아직도 나는 아빠와 단 둘이 있으면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어색하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상간녀와의 더러운 기억이 여전히 안주거리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아빠는 여전히 철딱서니가 없을 때도 많고, 나이를 먹으니 괜한 아집까지 생겨 엄마와 동생을 힘들게도 한다.
그런데, 그냥 그게 우리 아빠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난을 경험하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가 불구덩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더라도 1초의 망설임 없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사람이 바로 내 아빠라는 것을 안다. 그 믿음이 사실 그 역경 속에서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아빠가 죄책감 없이 남은 생을 산뜻하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죽어도 장례식도 가지 않겠다던 나는 이제 없다. 아빠가 본인을 희생해서 우리 가족을 먹이고 새끼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나는 그의 남은 생과 저승 가는 길까지 그를 지킬 장남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