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기 정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2024년 8월 25일 일요일

by 곽다영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들어가며’를 방금 읽었다. 지난달 동탄에 있는 ’아랑책방‘에 책을 소개하러 들렀다가 구입한 책이다. “재미있는 책 고르셨네요.” 하며 반가워하던 서점 지기의 말이 기억난다. ‘다정’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따듯하고 푸근한 데 반해 ‘살아남는다’는 말은 생존과 연결되어 자연히 경쟁이나 싸움이 연상된다. 언제부터 생존의 개념이 ‘적자생존’으로 직결되기 시작했을까. 서문에서 인용된 다윈의 말 중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라는 문장이 있다. 저자는 ’친화력은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며,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준다.‘라고,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서로 다정할수록, 사랑할수록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니. 그것이 과학적 사실이라니 기쁘고 반갑다. 작년 겨울 김초롱 작가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작가가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너무 무서운 말이지 않나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했던 때가 있었다. 짐짓 쿨한 척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때로는 정말로 원한다고 믿으면서 입 밖으로 내뱉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정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을까.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을까. 그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을까. 받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 데 섞여 결국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지고 그래서 아예 관심을 기피하게 되었던 걸까. 한때의 나는 소수의 사람과만 관계하며 살고자 했다. 불필요한 만남과 관심과 안부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정말 불필요한 것들이었을까. 나는 자주 혼자 있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삶을 상상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그 너머의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 우리를 벗어난 타인도 행복해야 비로소 진짜 행복이 가능하다. 각자도생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인간은 본디 혼자 살 수 없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서로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함께 기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나는 어쩐지 그런 세상에 더 가까이 가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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