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냥펀치 맛 좀 볼테냐
남해에서는 친구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던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멤버는 사람 셋과 고양이 하나.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는 늘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책임감과 행여나 먼저 떠나보냈을 때 상실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선뜻 그 귀여운 생명체들을 곁에 두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할 생활에 마음이 부풀었다. 책임감은 친구의 몫이고, 귀여움은 나의 몫이니까. 히히
친구는 고양이의 어린 시절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키운 지 1년 만에 버린 고양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 벌써 열 한 해를 같이 보냈다고. 이젠 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에 가깝다고 했다. 고양이의 이름은 코양이. 오타 같은 이 이름이 이 집 고양이의 실명이다. 회색깔 털에 파란 눈을 가진 샴고양이인 코양이는 그렇게 내 삶에도 우연히 들어왔다.
기대와 달리 코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엄청난 애교를 부리거나 졸졸 따라다니지 않았고, 뭐 거의 무시하셨다. 낮엔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깨다 하셨고, 밤엔 조금 돌아다니시다 스크레쳐를 벅벅 긁으셨다. 그러곤 그루밍을 하시거나 볼일을 보시곤 모래를 슥슥 덮어두셨다. 나도 모르게 존대를 하게 되는 것은 코양님의 생활이 너무나 품격 있고, 우아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좇아 생활하셨다. 자신을 만져주길 바랄 땐 무릎에 잠시 올라오셨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금세 자리를 떠나버리시곤 했다.
보면 볼수록 코양이는 나는 여러 면에서 너무 달랐다. 특히 우리는 정반대의 인간관계 스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나는 누구든 '우왁! 친해져!!! 오늘부터 우리는 베프!!!' 하며 다가가는 댕댕이 스타일이고, 코양님은 무심한 듯 정말 무심했다. 밥을 주는 우리를 자기 부하라고 생각한다는 설도 있는데, 고양이들의 정신승리가 놀라울 정도다.
남해에 와서 첫 일주일은 마치 무언가에게 쫓기는 사람 같았는데 글을 쓰려고 회사까지 그만두고 왔으니 빨리 결과물도 내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 이리저리 종종거렸다. 그 와중에 남해는 차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곳이라고 해서 차를 사려고 수소문하고, 중고차 사이트도 뒤졌다. 상가 매물이 나오면 가게를 보러 가기도 했다. 무슨 가게를 할 계획도 없으면서.
크고 작은 모임이 매일 밤 벌어져 사람들과도 거의 매일 만난 것 같다. 다행히 남해에 사는 친구 집에 내려와 살고 있어서 남해 사람들과 친해지기 비교적 쉬웠다.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어 두 손을 꽉 쥐고 잠드는 밤이 잦았다. 꼭 쥔 손 안엔 하루를 꽉꽉 채워 뭐든 하려고 하는 욕심이 그득했다. 하지만 관심사가 초단위로 바뀌느라 글은 한편도 못 쓰고, 도시에서 부터 따라온 소화불량도 낫질 않아 읍에 가서 약을 타 왔다.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제 버릇을 어디에도 주지 못하고 배낭처럼 짊어지고 온 것이다.
이 와중에 틈틈이 마주치는 코양님은 햇볕을 쬐시다 식빵을 구우시고 낮잠을 주무셨다. 진짜 듣던 대로 태어난 김에 사셨다. 하지만 누가 코양님을 게으르다 욕할 수 있나. 우리의 고양이님이신데. 가끔은 인상을 쓰고 야생동물처럼 걸어 다니셨다. 근데 말랑모찌 통통한 발은 또 어찌나 귀여우신지.
잘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강박이 되면 스스로를 힘들게 할 가능성이 크다. 남해의 조금 느린 속도를 느끼면서 코양이의 늘어짐을 보면서 정신없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나의 팽팽함에 민감해질 수 있었다. 손으로 탁 튕기면 툭 하고 끊어질 정도였다. 아, 이러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못하겠다고 어디로든 또 떠나고 싶겠구나.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사람처럼. 이제야 왜 그렇게 많은 일을 벌이면서 끝맺음은 잘 맺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늘 단거리 전력질주만 가능했던 이유를. 인생이란 장기전이 버거웠던 이유를.
나는 나의 팽팽한 마음을 조절할 줄 몰랐다.
결국 어디에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끊어질 때까지 팽팽하게 당기는 내 습관이 범인이었다. 나를 병들게 하는.
코양이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햇살을 받은 털을 혀로 핥으며 자신을 단장하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 밥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늘어지게 한 숨 (아니 두 숨, 아니 세 숨..) 자고 누구에게도 잘 보일 생각이 없고 불편하면 자리를 떠나버리는 코양이의 하루를 바라보면 '인생 선배님~'하고 불러보고 싶어질 정도다. 코양이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 흉내 내다보면 정말 액체처럼 유연해지지 않을까. (고양이 액체설도 있던데)
우리도 고양이를 보듯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도 고양이에게 왜 그러고 사느냐고 왜 잠만 자냐고 따뜻한 햇볕만 쬐냐고 잔소리하지도 바꾸려 하지도 않듯, (고양님은 바꿔주시지도 않으시겠지만) 그저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고양이 보듯 바라볼 수 있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지는 고양이의 일과처럼 서로를 그렇게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자신의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까 평화롭게 삶을 즐기는 사람을 보며 게으르다고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자신이 쉬고 싶으니까.
난리 치지 않고 느긋하게 내뜻대로 살고 싶은 나의 작은 롤모델. 경거망동하고 나부닥대고 일을 벌이고 귀도 얇은 나와는 정반대인 코양이.
나도 이제 피곤하면 쉬고 피곤하지 않아도 쉬고,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면 궁뎅이를 탁 들고 일어서 가버려야지. 스크레쳐 대신 마사지볼과 스퀴즈 인형도 샀다. (말랑말랑 촉감 인형이다) 스트레스는 셀프니까.
만나서 반가워. 코양아.
ps. 궁디팡팡하는 법을 유튜브로 배워 시전 했더니 코양님이 이제 부쩍 나를 따라다니신다. 아침엔 일어나라고 문 앞에서 아옹 아옹하시고 약간 질척거리기까지 하신다. 하지만 손목이 나가도록 궁디팡팡을 해드리면 떠나.. 신다...
인스타그램에도 놀러오시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