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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록 Apr 05. 2022

이 집에서 가장 가는 롯뜨로 말아주세요

동네 미장원에서 히피펌 하고 만삭 피어서에게 코 피어싱 한 날

 하고 싶었던 것이  가지가 있었는데  피어싱과 히피펌이었다. 하지만 선뜻 하지 못하고 자꾸 목전에서 서성였다. 친구들에게   피어싱 할까?  히피펌 할까?  재차 삼차 물어보고  피어싱을 예쁘게  태연님이나 현아님을 검색하며 뚫을 위치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정작 예약을 해놓고 취소해버렸다. 어릴  엄격하신 부모님 아래에서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말았다.  뚫는 것에도 노발대발하시는 분들이시지만,  번은 아빠에게 편지를 써놓고 머리를 빨갛게 정말 가을 단풍처럼 빨갛게 염색한 적도 있다. 다음날 바로 엄마 손에 이끌려 시커먼 양귀비 블랙으로 다시 염색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맞아 죽어도 하겠다는 배포가 있는 청소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하고 싶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주저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를 막아 세우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질풍노도 청소년도 아닌데 외적 일탈이 왜 하고 싶은 것이냐며 스스로를 채근했고, 교육계에서 다시 일할지도 모르지 않냐며 불확실한 가능성에도 내 마음을 잡아 세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치기 어린 철도 안 든 삼십대로 보면 어떻게 하냐는 자의식 과잉까지 한몫했다. 이런 쉰내 나는 생각 때문에 마음에 곰팡이가 필 것 같았다.


남해에 내려와 몸의 리듬대로 살며 그저 나를 내버려 두니 마음이 뽀송하게 말라갔다.


그냥 하고 싶은 거잖아.


히피펌은 그저 머리를 툭툭 말리면 되고 그냥 묶어도 스타일리시해 보였다. 특히 고불고불한 앞머리가 너무 귀여웠다. 코 피어싱은 왠지 아플 것 같고 관리도 힘들 것 같은 데다 시원하게 동굴 탐험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콧볼에 반짝이는 큐빅을 콕 심어보고 싶었다.

 





 히피펌 성지를 찾아 인스타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해 근처에 어디 없나 찾아봤더니 내가 원하는 정말 빠글거리는 머리를 한 여자분 사진이 떴다! 진주에 있는 미용실 해쉬태그를 달고 있었다. 탐정처럼 서둘러 검색을 해보니 리뷰는 단 4개뿐인 그마저도 따님 사진인 것 같은 작은 미장원이었다. 머리 사진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얼마 없는 리뷰와 작은 미용실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울에서는 언제나 리뷰가 산처럼 쌓인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가곤 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결과물이 보장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남들이 다 하는 선택을 해야 안심이 되었다. 머리가 잘 되면 역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이유가 있다며 만족해하고, 잘 안되면 잘한다고 해서 갔는데 이게 뭐야? 라며 리뷰를 원망했다. 선택도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언제나 다수의 타인에게 미루고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집단지성은 실패의 리스크를 줄여주지만, 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다수의 평균적인 취향에 맞춰져 있다. 서울에선 늘 그 리뷰를 따라다녔다. 내 입에 맛있어도 리뷰를 보고 다들 맛있다고 하는 것을 봐야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역으로 오지 탐험하듯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찾아 자신만의 숨은 장소를 만드는 사람들을 흠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감은 포털사이트 리뷰에 없다. SNS도 하지 않고 소중한 지인들만 데리고 다닌다. 그러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곧 다른 곳으로 떠난다.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취향이 평점으로 수렴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내게 은은하게 매력을 풍겼다. 나도 그리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기웃대며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을 그만두고 나의 선호에 민감해지고 싶었다. '늘 좋은 것이 좋은 거지'하며 둥글게 살며 많은 좋은 것들을 놓치고 싫은 것을 참고 살았다. 실패가 두렵고 성공은 더 두려워서.




 

 

같이 사는 친구들의 크고 작은 만류에도 그 작은 미장원으로 가기로 했다. 또 우리 어머니 미용사분들이야말로 풀리지 않는 고불고불 빠마를 잘 마시는 분들 아니신가! 어머니 손님들은 파마가 빨리 풀리는 미장원에는 자비가 없으시다. 진주의 다른 미용실 히피펌 사진은 그저 보통보다 좀 더 바글거리는 파마로 보였다. 물론 더 빠글거리게 말아달라고 하면 해주시겠지만, 디폴트 값이 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미장원의 히피펌 사진은 이것이 사람 머리카락인가 라면 가락인가 싶을 정도로 꼬불거렸다. 그리고 빌드 펌, 엘리자베스 펌, 젤리 펌.. 이름도 오만가지인 펌으로 손님을 뚝딱거리게 하는 곳이 아닌 그냥 파마! 염색! 이렇게 두 종류밖에 없는 심플하고 깔끔한 곳. 그래 이곳으로 가자. 머리는 다시 자라고. 진짜 후회 없는 히피펌을 하고 싶어.








같이 사는 친구들도 머리를 하러 갈 때가 되었다며 같이 진주로 향했다. 친구들은 리뷰가 산처럼 쌓인 다른 미용실로 흩어졌다. 너 진짜 괜찮겠어? 하는 말을 남기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혼자 버스를 타고 미장원을 찾아가면서 끝까지 망하면 어쩌지, 내 머리.. 어쩌지.. 가지 말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미용실에서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길은 또 잘 찾아서 금세 뱅글뱅글 알록달록한 미장원 표식이 휘돌아 가는 작지만 깔끔한 미용실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서자 기황후를 즐겁게 시청하고 계시던 눈 화장이 매력적인 숏커트머리 사장님께서 나를 맞아주셨다.


 "히피펌하러 왔는데요..."

 "오, 네 그래요 그래요."


 준비한 사진을 수줍게 보여드렸다. 고불거리는 앞머리가 너무 매력적이라 하고 싶었던 히피펌이라 하고 싶은 느낌의 머리 사진을 보여드렸다. 오케이를 외치시고는 시원하게 툭툭 앞머리를 자르셨다. 따님이 히피펌을 너무 좋아해서 자주 한다고 하셨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좋아 손놀림 느낌 있으셔. 여러 생각하기 전에 사장님은 내 의자를 기황후가 나오는 티브이 쪽으로 휙 돌려주셨다. 하지원이 전쟁으로 도모하고 있었다. 나도 준비가 되었다.



"생각보다 더 빠글거릴 수 있어요~ "

"네! 저는 빠글거릴수록 좋아요!"



쌍 따봉을 들어 올렸다. 사장님께서는 빠르게 빠마를 말기 시작하셨다. 기황후가 너무 재미있어서 모든 근심 걱정을 잊고 빠져들었다. 하지원의 긴 생머리를 보면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흔들렸지만 뭐 어쩔 것인가 이미 늦었어... 체념하며 다시 기황후의 커리어 개발 여정기에 집중했다. 실화에 기반한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것 같은데 나는 보지 않았던 드라마다. 찾아보니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게 된 기황후는 이왕 이렇게 된 것 더 많은 기회를 잡고 꿈을 펼쳐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된 것 히피펌의 끝을 보고 싶었다. 완전 빠글빠글 거리길 기대하며 뜨거워지는 두피도 참으며 열펌을 견뎠다. 기황후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내 빳빳한 직모도 파마약과 전쟁 중이었다.







여유로운 남해에서 나 혼자만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할까 말까 존에서 벗어나는 전쟁. 망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하며 망설이는 나 자신과의 전쟁. 다른 사람 눈에 좋은 사람이 되려고만 했던 오랜 습관을 버리는 전쟁.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잘 모르고 마음을 눌러왔던 무심한 나와의 전쟁. 얇디얇은 롯드에 말린 머리카락이 중화제를 거쳐 시원하게 씻어 나와 마음껏 꼬불거리는 승리를 쟁취했다. 하지원도 전쟁에서 이겨 정권을 장악했다. 기황후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파마 향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수업을 마친 중학생들이 버스로 밀려 들어왔는데 작은 일에도 깔깔 대며 수다를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복을 정갈하게 입은 아이들 틈에 파마약 냄새를 풀풀 풍기는 빠글 머리 삼십 대 백수가 앉아 있다. 마음에 들어. 내 마음에 쏙 들어. 마음속에 리뷰를 남겼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꼭 저만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너희도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는 꼰대 같은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예뻐 보이기만 했다. 이모는 마음에 들어. 이제. 이모 인생이.



자 이제 코를 뚫을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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