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사주를 두 번 보았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뭔가를 꼭 보태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사막의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이 아직 어리고 모르는 것이 많아 안 쓴다고 했다. 그 친구는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사람이 글을 쓰지 않으면 대체 누가 글을 쓸까 싶지만 친구는 열심히 내공을 쌓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때가 되면 그 친구는 엄청나게 멋진 글을 써낼 것이다.
아가리 라이터(말로만 책 쓴다고 하는 사람)에서 탈출해 지금 이렇게 현생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글을 읽을 때나 글을 쓰겠다고 계획만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조금 밥맛 없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매일 글 쓸 생각에 설레기까지 할 때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읽어봄직 하지도 않고 책으로 내면 아마존의 나무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이불 킥을 하더라도 지금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어리고(그다지 어리진 않지만) 모르는 것이 많은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내 친구처럼 나중에 멋진 글을 써내리라는 자신도 없기 때문에 그저 그런 글이라도 지금 쓰기로 했다. 위대한 고전을 읽으려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행간의 의미를 놓칠세라 각을 잡고 읽어야 할 때가 많지만, 내 글은 편하게 슥슥 읽어갈 수 있다. 그러다 자기만 아는 자신의 그저 그런 모습을 내 글에서 찾으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며 공감하게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은 공감을 하는 만큼 강해진다고 하던데, '이 사람 글을 읽으니 내 찐따력은 뭐 귀여운 정도다.'라는 자기 위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시작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나의 수십수백 번의 그저 그런 글들이 미칠 영향을 그러모으면 내 친구가 나중에 쓸 미래의 거대한 한 편에도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엔 적어도 일주일에 두 권 이상씩 책을 읽었다. 해결책을 찾고 싶거나 친구가 필요할 때 자주 책으로 빠져들었다. 소심한 찐따에 가까웠음에도 스스로를 꽤 똑똑하다고 착각했을 때에는 세상을 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책이란 작가의 정제된 생각을 담고 있기 마련인데, 이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규칙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온갖 변수가 작용하는 엉망진창에 가깝기 때문에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여러 단면을 조각 케이크처럼 맛보며 '인생이란 초콜릿 맛이구나.'라고 잠시 착각했다가 다른 책을 읽으면 '아니, 단호박맛이었잖아?' 하는 식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전혀 다른 맛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세상이 대체 어떤 맛인지 아리송했다. 결국 세상이란 온갖 맛이 뒤섞인 뷔페인 것 같아 책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었다. 그렇다고 책을 읽지 않을 것이냐면 오히려 최대한 많이 읽고 싶은 쪽에 더 가깝다.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시도 자체를 멈추고 책이 주는 즐거움 자체를 자근자근 씹으며 음미한 뒤부터는 전보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새로운 맛을 내는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졌다.
남해에 내려와서 50일 간 끝까지 읽은 책은 총 네 권이다. 최대한 읽지 않고 쓰려고만 했지만 개가 똥을 끊.. 아니, 책을 끊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글이 잘 써지지 않던 초반 이삼주 동안에는 책을 읽으며 예열을 했던 것 같다. 책을 읽은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호호호'(윤가은), '준최선의 롱런'(문보영), '나는 알람 없이 산다'(수수진), '젊은 ADHD의 슬픔'(정지음).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읽고 보니 모두 다 젊은 여성 작가의 에세이였다. 어쩌면 나는 이 네 분의 작가님들에 동시에 빙의하여 남해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묶은 윤가은 감독님의 '호호호'를 읽으며 대상에 애정을 쏟는 태도에 대해 배웠고, 문보영 작가님의 '준최선의 롱런'을 읽으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수수진 작가님의 '나는 알람 없이 산다'를 읽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정지음 작가님의 '젊은 ADHD의 슬픔'을 읽고 짧으면서도 개성 넘치는 문체에 매료되었고 사주를 보게 되었다.
응?
정지음 작가님의 책을 읽고 '성인 ADHD'라는 질병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내 안에 있는 강도 약한 ADHD적 성향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문체가 위트가 넘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브런치 북 8회 대상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역시 브런치!) 작가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기도 하고 책에서 소개된 작가님의 반려묘인 '맷돌이'가 보고 싶기도 해서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을 찾았다. 그러다 작가님이 친구분들과 사주를 보러 간 영상을 보며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어버렸다. 분명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사주인데, 세 분 모두 사주 결과에 해탈하신 듯 웃음을 멈추지 못하셨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웃는 것만 보아서는 정말 좋은 사주 결과가 나온 것 같았지만 내용은 정말 마라 맛, 아니 붉닭볶음면 맛이었다. 사주는 '사람의 난 해, 달, 날, 시를 간지로 계산하여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예전에 친구들과 재미로 사주를 본 적이 있었는데 분명 서른두 살에 돈을 갈고리로 모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포크로도 모으지 못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성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특징적인 면을 잘 짚어주셔서 인상적이었다. '성격이 사주팔자'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 생긴 대로 살아갈 것이지만, 누군가가 한번 객관적으로 짚어주면 자기 객관화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메리골드(하우스메이트 2)에게 사주를 보고 싶다고 하자 예전에 할인을 받고 저렴하게 전화로 사주를 받아 본 적이 있는데 만족스러웠다고 해서 그분께 바로 상담을 예약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철학가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특히, 궁금한 것이 있나요?"
"저... 결혼할 수 있나요? (민망함에 터져 나오는 웃음) 그리고 저.. 퇴사하고 지금 글을 쓰는데... 어떻게, 잘 될까요...?"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우리 이제 다 알 것은 아니까~"
"(잘 모르지만) 네! 네!"
철학가님은 내가 침체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고 표현하려는 성향이 강하나, 에너지와 관심사가 너무 많아서 한 가지를 선택해서 집중해 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다행히 올해부터 엉덩이가 좀 내려앉으니 이제부터 글을 쓸 수 있겠다고 하셨다. 집중을 잘하고 싶으면 한낮에 하고 싶은 일을 한 다음에 오후부터 글을 쓰고 결혼은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고.......(철학가님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누군가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조언을 '사주풀이'라는 틀에 넣어서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유쾌하셔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이 일을 업으로 하시며 많은 분들께 조언을 해주셨을 테니 노하우가 엄청나게 쌓이셨겠지. 이런 분께 나의 인생만을 위한 조언을 20분간 듣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사주를 볼 것이 아니라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내려면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의 나는 사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른 분은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정지음 작가님이 봤던 철학원에도 전화상담을 예약하고야 말았다(내 지갑..). 예약한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고, 유튜브에서 들었던 그 시니컬한 어조로 생년월일을 물으셨다.
"특별히 궁금한 점은요?"
"저 같은 성향이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하면 될까요?"
"... 인문학 책을 많이 읽으세요."
(철학가님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마치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돈을 내고 듣는 것처럼,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일을 연구한 이 분에게도 결국 이 교과서 같은 대답을 돈을 내고 듣는구나. 물론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지만 생각보다 매운맛은 아니었고, 오히려 사주 풀이를 가장해 무뚝뚝한 학교 선배랑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달까. 누군가가 묻지도 않은 조언을 하기 시작하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지만 내가 내 돈 주고 조언을 듣겠다고 신청한 것이니 신나게 뼈를 맞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연이은 두 번의 사주 상담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이 삶이라는 것에 속 시원한 결론도 해결책도 없다는 것. 돈을 내지 않아도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왜 이렇게 자꾸만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책을 통해 받게 된 사주상담에서 또 책을 읽으라고 하시다니!
책 '준최선의 롱런'을 쓰신 문보영 작가님의 시 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수업에서 작가님은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시를 왜 쓰냐 하면 언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고, 예를 들어 모두의 슬픔은 다 다르니까 모두의 슬픔은 각자 고유한데 이 다른 슬픔을 표현해 보는 것이고,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한 나만의 슬픔과 비슷한 표현을 만났을 때 오는 위로가 있다고. 나만의 기쁨과 슬픔과 분노를 글로 표현해보는 것이 나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있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그저 그런 글일지라도 지금 내가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갑자기 여러 곳에서 사주 상담을 받는 애처롭기 짝이 없는 나만의 답답함과 헤맴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 오만가지 맛을 더 즐겁게 감각해야겠다. 남해군은 청년들에게 도서비 지원까지 해준다! (남해 최고!) 그리고 더 열심히 써야겠다. 누군가가 내 글을 맛보며 삶이 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