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파랗고 (2024)

물컵

by 김민주

하늘은 파랗고 (2024)


하늘은 파랗고 덜 자란 이파리를 가진 버드나무가 바람을 맞아 흔들렸다.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누웠다. 바람이 앞머리를 건드려서 눈가가 간지러웠다. 햇볕을 피해 눈을 살며시 뜨면 하늘과 그 자리를 조금 빼앗은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꾹 감고 바람이 무슨 색일지 그려봤다. 하늘이 파랑이니 바람도 파랑일까. 지난밤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꽤 취한 나는 얘기를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렸다. 건네주는 휴지를 받아 들면서 죄송함다, 원래 수도꼭지예요, 같은 말을 했었다. 알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축축하게 젖은 휴지를 손에 쥐었다. 컴컴한 밤의 울음이니 눈물도 까맸을까. 팔을 휘두르다가 물컵을 하나 깨먹었다. 검은 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잊고 싶은 기억이라기보다, 굳이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따라 맑은 눈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저 친구는 저번에 내가 이 얘기를 할 때도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 들었던 얘기니, 이번에는 울지 않을 줄 알았다.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 녀석을 따라서 나도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가봤지만 얼굴을 모르는 이들만 바글바글 했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휘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친구가 보였다. 이름을 불러 세워 보니 그새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친구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내 품에 안겨 있는 우는 이의 떨림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떨림이 가슴을 타고 들어와서 심장에 쌓이는 게 느껴졌다. 묵직해진 심장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더 많은 술잔이 흔들리고,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더 많은 떨림이 가슴에 쌓였을 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건넨 휴지를 받아 들고 눈을 꾹꾹 눌러 닦으면서 지난밤의 눈물이 떠올랐다. 죄송해요, 원래 수도꼭지예요. 알고 있어. 나는 똑같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심장에 쌓인 떨림들이 아우성치는 게 느껴졌다. 민주야. 심장이 떨리고 있어. 까맣고 까만 물이 흔들리다가 쏟아졌다. 지난밤에 떨어뜨린 물컵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다. 나무들 틈에 서서 담배를 피우다 말고 주저앉아 울었다. 그대로 있으면 영영 눈물을 참지 못할 것 같아서 가슴에 다시 물을 담아 놓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유, 정말 주책이야. 진짜 웃기다, 길에서 휴지 들고 이러고 울고 있는 게.


품에서 덜덜 울던 친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울면서 웃었다. 하늘은 컴컴하고 무거웠다. 깨진 물컵을 치우는 직원에게 연신 죄송하단 말을 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퍽 좋지 않다는 메세지를 남겼다. 물컵을 깨먹어서 죄송해요. 쏟지 않으려고 했는데. 컴컴한 물이 쏟아졌으니 휴지가 컴컴해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물이 가득 찬 컵이 흔들린다. 툭 치면 떨어져 깨져 버리고, 툭 치면 물을 쏟아버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나를 따라서 컵이 흔들린다. 툭 치면 깨져 버리고, 툭 치면 물을 쏟아 버릴 테다.

매거진의 이전글봄에게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