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2024)

아이스크림

by 김민주

아이스크림 (2024)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자고 연락이 왔다. 방금 전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줘 집에 막 들어온 참이었다. 방금 헤어져 놓고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아이스크림.


그래요.


답장을 보낸 뒤, 나는 다시 신발을 신고,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집 앞으로 나왔다. 골목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아이스크림 박스에 얼굴을 박고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을 때,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게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람이었다.


골랐어?

네. 이거 먹을래요.

내가 사줄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덜렁덜렁 들고 걸었다. 그 사람과 나는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주 함께 가던 놀이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집 앞에서 그는 손인사를 하고 뒤돌아 들어가는 나를 붙잡았다. 한 번만 안아보자.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며 그 사람을 쳐다봤고, 그 사람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가가 그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아마도, 아마도 그 얼굴 때문이었을 것이다.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은 가만 두지 못 하는 나다. 술을 마실대로 마신 뒤라, 품에 얼굴을 묻으니 금방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인사를 했다. 잘 가.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술에 달아올라 벌건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놀이터로 가는 길. 나도, 그 사람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했을까, 왜, 왜 나를 안아보자고 했을까.


벤치에 앉았다. 내가 먼저 앉자, 그 사람은 나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머리가 벌겋게 익는 느낌이 났다. 그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둘 다 말없이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시 집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 사람도 들어가, 그래, 같은 무어라 대답을 하고 뒤돌아 편의점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나란히 앉아 맥주를 두어잔씩 마시고, 서둘러 먹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는 여름 날 밤을 함께 걸었다. 별 얘기도 아닌 얘기들을 신나서 떠들다가 그 사람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전화를 받는다.


어어, 아직 밖이야.


좁고 좁은 골목길에 두 사람이 멀찍이 서서 걷는다. 누군간 사랑하는 이와 통화를 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멀찍이서 듣는다. 좁은 골목길의 끝과 끝에 두 사람이 함께 걷고 있었다. 그 사이를 모르는 차들이 지나치며 한마디씩 한다. 거, 아이스크림 다 녹는다. 그 말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이스크림은 원래 녹아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서둘러 먹지 않으면 줄줄 녹아내리는 여름의 아이스크림. 끈적끈적하게 손에 남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싫다. 싫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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