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
-
밥 안 먹어! 학교 보내달라고!
얘가 진짜 왜 이래, 누가 학교 안 보낸대? 가라니까, 가라고.
나도 안다. 우리 집 형편은 누구보다 잘 안다. 오빠가 하나, 그리고 나, 아래로 남동생 하나, 그 아래로 여동생이 둘. 오빠는 재작년에 시내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이제 곧 내 차례다. 이 시골을 벗어나서 나도 시내로 나가야지, 철마다 농사일을 돕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싶다. 낡아빠진 신을 신고 한 시간씩 걸어 학교에 가는 것도, 아직 초등학생인 동생에게 낫질을 가르쳐주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면 농사를 지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래서 성적이 좋으면 당연히 나도 시내의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말에 다리를 다치면서 잠시 공부를 소홀히 한 사이에 성적이 훅훅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시내의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은 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학교에도 무난히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내 노력을 버리기에 나는 너무도 아쉽다는 이야기다. 그날, 처음 아버지에게 이 얘기를 꺼냈던 날, 아버지의 덜덜거리는 오토보이 소리가 마당으로 들어올 때는 심장이 두 배, 어쩌면 세 배는 커진 것 같았다. 하도 큰 소리로 쿵쾅 대길래, 아무래도 심장이 이마안큼, 이만큼은 더 커졌나 보다 생각했다. 아버지, 저 성적도 되고 오빠 따라서 시내로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엄마도, 아버지도 안된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상업고등학교에, 아니면 농업고등학교에 가서 기술을 배우라고. 그래서 우리 동생, 우리 차남, 우리 아들 공부시키자고.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가 올해 옆 반으로 갈라진 단짝 윤희가 딱 그랬다. 하나 있는 막내아들 공부시키려고, 그럼 일을 해야 한다고 상고에 가기로 이야기가 끝났더란다고 마치 남일 얘기하듯 내게 말하던 게 엊그제 아침 등굣길에서였다. 농사만 해선 우리 오 남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아홉 식구가 같이 살고 있고, 마당에는 닭이 한 마리, 사나울 게 하나 없는 백날천날 아기 같은 다 큰 개가 한 마리. 알고 있다. 누구네처럼 용돈을 받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고, 그 용돈을 모아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한 아름 사다 내 책장에, 내 책장도 없지만, 꽂아두는 것은 더더욱 꿈에서의 꿈에서조차 바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밥만 먹고 살면 다행이다. 그만한 사정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상고 가기 싫어. 농고도 싫고. 그런 거 하기 싫어. 쟤 대학 보내자고 돈 벌기 싫단 말이야.
얘가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아버지는 처음 내가 말을 꺼냈던 날 안 된다, 한 말씀하신 후로 며칠 동안 귀머거리처럼, 아니, 내 말만 쏙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니, 처음부터 내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꾸도 없이 동요도 없이 눈 하나 꿈뻑 없이 그렇게 나를 보신다. 대신에 언젠가 아버지가 호통을 치실까 내가 매를 맞을까 겁에 질린 엄마만 옆에서 자꾸 채근을 한다. 그만하라고. 그만해, 그만. 그렇게 되지 않을 테니까 그만하라고. 아버지 앞에서 버티고 서있는 내 팔을 잡아당겨도 봤다가, 등짝을 밀어도 봤다가, 그래도 꿈쩍을 하지 않으니 팔뚝을 큰소리가 나게 철썩철썩 때린다. 소리만 크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학교 보내줄 때까지 밥 안 먹어!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씻지도 않고, 공부도 안 하고, 밭일도 안 보고, 동생들도 챙기지 않을 거야! 잠도 안 자고! 아무것도 안 해!
나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이 엄마의 옆에 덩그러니 않아 엄마가 가져다준, 하나 남은 곶갑을 짭짭 소리 내어 먹는다. 손에도 진득하게 붙은 곶감이 쩍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가 다시 입으로 들어간다. 막내가 옆에 붙어 앉아 자기도 먹고 싶다 칭얼대니 손에 붙었던 곶감을 막내 얼굴 가까이 슥 내민다. 진득한 곶감이 막내의 입가에 들러붙었다가 떨어져 나간다. 작은 이빨 자국이 난 곶감은 다시 남동생의 입안으로 쏙 들어간다. 진득한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는다. 막내도, 남동생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저 곶감은 남동생의 것이라는 걸. 막내가 먹은 것은 남동생의 것을 한 입 얻어먹었을 뿐이라는 것을. 쟤는 아무것도 한 거 없이 곶감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곶감의 주인이 되어서 막내에게 선심을 쓴다. 지가 만든 곶감도 아니면서. 아까부터 강아지가 좁은 마당의 끝을 따라 뱅글뱅글 돈다. 돌고 또 돈다. 닭은 어디 들어가 자고 있는지 오늘 종일 통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