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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Dec 24. 2019

겨울은 온통 크리스마스였던 날들

메리 크리스마스

캐럴이 길에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 시작 즈음부터 퍼지는 노래에 연말연시를 느끼며 설레였었다. 우리 집은 겨울이 되면 아빠가 어디선가 나무를 가져왔다. 뾰족뾰족한 초록 잎이 있던 작은 나무. 그 나무를 화분에 심고 엄마는 그 위에 하얀 솜을 깔아 주셨다. 그리고 과자와 초콜릿을 잔뜩 사 오셨다. 나와 동생은 하나씩 나무에 이쁘게 걸어 주었다. 동글동글 솜뭉치를 만들어 함께 트리를 만들어 갔다. 종이를 여러 번 겹처 접어 끝을 잘라내 펼치면 모양이 다양하게 나오는 별도 만들었다. 가장 큰 별은 나무 꼭대기에 올려 주고 꼬마전구를 나무에 칭칭 감으면 트리가 완성됐다. 겨울 내 우리 집 한 모퉁이엔 반짝이는 간식 트리가 자랐다. 별을 만들며 눈 결정체도 만들고 루돌프도 만들고 거실 창은 눈과 루돌프가 가득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몇 번 누르면 트리도, 스티커도 바로 집으로 배송이 오는 시절이지만 그때 느꼈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 따듯하면서 아련한 느낌. 말로 표현이 어렵다. 작년인가 문득 그때의 크리스마스가 그리워 작은 트리를 샀다. 아이들과 장식하고 조명도 키고 노래도 부르고 소원도 빌었다. 잠들기 전, 아이들이 트리를 들고 와 키고는 반짝이는 조명을 이쁘다 이쁘다 바라보다 잠들었다. 작은 트리다 보니 노는 곳마다 왔다 갔다 옮겨 다니고 넘어지기도 잘하고 먹는 장식이 아닌데도 하나둘 없어지더니 겨울에서 봄으로 지날 즈음 트리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1년을 지내고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에 찾아 둔 장식 하나를 얹었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시간의 무성함이 느껴진다. 어느덧 자라서 이가 흔들린다고 한다. 올 겨울 이가 뽑히면 이를 달아줄까. 좀 무서우려나.


올 겨울은 이렇다 장식을 하지 않았지만, 1년 내 나무로 지내온 트리가 있어서 일까 겨울도 금방 다시 찾아오고 크리스마스도 금방 오고 한 해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느낌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해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던데 아이를 키우며 한해 보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트리 때문일까. 내가 어렸을 때의 느낌은 선물의 설렘이라면 지금은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랄까. 일 년 내내 산타할아버지를 소환하며 말 안 들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준다며 선물 안 받고 싶냐고 협박?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한 해가 온통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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