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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바토 Feb 23. 2020

평화로운 목욕을 위해서

재밌는 이야기 주머니가 있었으면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많이 듣고 자랐는데, 애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려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호랑이가 살았데.' 그렇구나. 그래서 옛이야기 보단 그냥 상황에 맞는 스토리를 지어낸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 개인위생이 중요하다 보니 외출 후 목욕이 필수인데, 가끔 애들은 하기 싫어한다. 아이스크림 줄게, 목욕 끝나고 장난감 가지고 신나게 놀아, 나중에 마트 가자, 안 씻으면 맛있는 거 안 사줄 거야. 온갖 꼬드김에도 잘 넘어오지 않는다. 그럴 땐 안 씻으면 세균이 널 아야 아야 하게 해서 병원 가서 큰 주사를 맞아야 된다는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세균이 여기 좋다고 다른 세균 친구들 잔뜩 데려오면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주사 맞아야 되고 병원에 혼자 자야 되고 아프고 힘들고. 씻으면 괜찮아.


겨우 들어온 욕실에선 큰 아이가 비누 거품을 안 한다고 한다.  물만 뿌리고 싶다고. 물만 뿌리면 세균이 떨어지지 않는데... 세균이가 지우가 좋아서 지우야 놀자 하고 놀러 왔어. 지우는 이제 집에 가야 해서 세균이랑 그만 놀자 하는데 세균이 가기 싫데. 혼자는 심심하데. 심심할 땐 친구랑 놀잖아 세균이 한 테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주는 거야. 뽀글이 친구. 뽀글뽀글 친구들 안녕 인사하고 세균이 가 손잡고 놀러 간데. 어디로? 하수구 나라로. 어떻게? 버스 타고. 어 저기 뽀글이는 안가네? 저 뽀글이는 다른 친구 기다리느라 아직 안 가고 있어. 지우도 친구랑 놀 때 다른 친구랑도 같이 놀잖아. 어! 친구 만났다. 같이 버스 타고 하수구 간다. 와 저 버스는 엄청 빠른가 봐 슝~ 지나갔어. 저 친구들은 왜 가만있어? 버스 기다리고 있어. 버스 태워주자. 안녕~ 와 목욕 끝났다.


다 할 거면서 처음엔 왜 안 한다고 하는지. 다행히 평화롭게 목욕이 끝났다. 이것도 기분이 좋아야 할 수 있지 기분이 안 좋은 날은 택도 없다. 왜 안 씻어! 빨리 씻어! 육아 서적을 보면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일 힘든 일인 것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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