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맞는 말 보다 위로의 말일지 모른다.
과거의 슬픔에 사로잡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솔루션은?
당연히 과거의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 용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것을 몰라 그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 것을 몰라 위안부 할머니들은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일까?
5.18 유족들은 4.3의 날카로운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은 그 피해를 트라우마처럼 안고 사는 것일까?
누구나 맞는 말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 맞는 말을 하기 위한 격을 갖추기 위해서
함께 울고 함께 공감해야 한다.
함께 우는 자가 맞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아프지만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그들의 허락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의 배상논리가 아쉽다.
우는 자와 함께 울기보다는
판결된 돈을 지불하면 된다는 논리가 너무 아쉽다
그리고 4.3을 향해 자신은 사실을 말했으니 사과할 것이 없다는 국회의원의 말이 아쉽다.
그에게 배지를 달아준 것도 국민이고 본인이 믿는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그들과 함께 우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인데 말이다.
해법은 '용서'에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을 하기 위한 과정은 분명 '존중'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윽박지르고 사실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위정자들의 태도에 국민이 또 한 번 트라우마를 겪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