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선 Aug 06. 2019

대학의 순서 1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이번 글에서는 감명 깊게 읽었던 『대학』이라는 책을 내 배달 생활로 풍자해보려 한다.     


내가 처음 한문을 접했던 책은 『대학』이었다. 대학은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인 주자라는 사람이 질서 정연한 편집을 통해 출판한 책이다. 이 대학이라는 책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순서를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격물에서 수신까지만 다뤄보려고 한다.     


1. 격물(格物) - 사건에 이르는 것     

늘 배달일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로 인해 여러 사건 사고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서울대 병원 7층에 음식을 배달하러 갔는데, 7층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음식을 한쪽에 두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내려가면서 고객에게 전화로 한쪽에 두었다고 말을 하는데, 그 고객은 나에게 불만을 표했다.     

“아니 없어질 수도 있는데, 그냥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내 잘못도 있긴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공손한 말투로 하지 않아서 내 마음에 순간 분이 올라왔던 건 생략하고, 그냥 껍데기 말만 따져보려 한다. 어쨌든 저렇게 사건을 만나는 것을‘격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치지(致知) - 앎을 지극히 하는 것     

저런 사건을 만났을 때,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일을 가지고 그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 곱씹어봐야 한다. 딱히 생각나는 경험이 없다면 그냥 입장을 바꿔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된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실의 걱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집 앞도 아니고 공공엘리베이터 앞에 두고 갔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고객 입장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머리로 이해를 자세히 해보려는 태도가 ‘치지’다.     


3. 성의(誠意) - 뜻을 성실히 하는 것     

뜻을 성실히 분명히 하는 것이다. 내 입장을 떠나 고객 입장이 머리로 이해가 됐다면, 그 이해의 입장을 일관성 있게 분명히 마음으로도 납득해야 한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이해한 그 상태를, 내 마음에 딱 제대로 박아놓아야 한다.

이게 쉽지 않은데, 내 몸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는 했어도, 내가 타고난 기질은 그 이해가 내 몸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래도 성실히 잘 심어보자.     


4. 정심(正心) -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     

그 이해된 입장으로 마음에 잘 심어보려고 하면, 갑자기 다른 측면의 견해들이 떠오르면서 기존의 이해를 부정하려는 또 다른 마음이 고개를 든다. 예를 들어, 놔두고 가도 없어지지 않을 확률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사실 내 경험상 없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없어지면 내가 물어주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상황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해 넘어가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사고체계에 심어놓은 ‘물질만능주의’이기에 더욱 경계해야 한다. 문제가 됐던 포인트는 상대와 협의하지 않고 물건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행위’이다.      


그러니 다른 반론을 펴서, 상황을 다시 중간으로 돌려 모호하게 만들고 싶은 그 다른 마음들을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견해를 일으키는 마음들을 눌러 바르게 펴서, 그 사람을 머리로 이해했던 입장으로 내 다른 마음들을 바르게 정리해야 한다.     


5. 수신(修身) - 몸을 닦는 것     

내 마음의 동요를 진정시켰다면, 행동으로까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부터는 놓고 가지 않는다던가, 혹은 전화로 사전협의를 한 상태에서만 놓고 간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몸을 닦는다는 ‘수신’이다. 그렇게 내 행동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머리에서 마음 정리까지, ‘정심-수신’은 정리된 마음에서 행동으로 가는 순서를 세밀화한 것이다.     


이렇게 책에서 순서를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격물에서 시작해 수신까지 오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나 또한 매번 느낀다.

그래도 잘 외워서 여러 사건에 몇 번 써먹다 보면 나의 새로운 행동 패턴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는 이런 수신의 결과물은 결국 더 새로워지는 내가 되는데 강력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위에 걸맞게 일할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