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선 Oct 03. 2019

장사는 퍼 줘야돼

노자 81장

2019년 10월. 어제 비가 종일 내리고 갠 맑은 아침이었다. 땅 위에는 아직도 축축한 습기가 가득하지만, 비가 온 다음 날은 언제나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그러면 마치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은 것처럼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늘 그랬듯 아침 9시부터 배달앱을 켜놓고, 부리나케 못다 한 아침 정리를 하며 간간이 갈만한 콜이 뜨나 확인도 하면서 출근 준비를 했다.     


콜이 여러 개가 뜨지만 내가 가고 싶은 콜이 없다. 하지만 대기 콜이 10개쯤 넘어가면 관제 매니저에게서 도와달라는 전화가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맘에 안 드는 똥콜을 받기 전에 갈 만한 콜을 하나 잽싸게 잡아두어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온몸에 닿으니, 싱숭생숭한 봄의 설렘 같은 것이 몸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오토바이 속도계는 30을 넘지 못한 채, 자전거처럼 천천히 굴러간다. 오토바이 같지 않은 30킬로의 속도로 신당동과 황학동을 굼벵이처럼 다니다가, 삼선동에 위치한 돈암제일시장의 ‘돈암 순대’ 가게로 음식을 픽업하기 위해, 또 굼벵이처럼 천천히 굴러간다.     


“아줌마 18,300원짜리요.”     


아줌마는 지체 없이 곧바로 말씀하신다.

“기다리세요.”          


아주머니가 단칼에 무 자르듯 말씀하셔서 차갑고 성의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대로 그런 말들이 친절하고 진실하게 느껴진다. 내가 건넨 말을 깔끔하고 간단명료한 대답으로 즉각 돌려주어, 상황의 모호함을 단칼에 없애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종종 어떤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때, 쉬운 질문도 대답을 즉각적으로 돌려주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진실하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계산인지, 상대방을 위한 계산인지, 아니면 이해를 못 한 채 혼자 꿍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 곧바로 나오지 않는 그 모습만 놓고 본다면 상대에게 진실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기다려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바로 의자에 앉아 지인과 동료들에게 톡을 날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본 다른 아주머니는 말씀하신다. “아침 먹어요?” “네 주세요.”     


아침에 분주히 출근하느라 양반죽을 하나 먹은 상태여서, 주저 없이 달라는 말이 나왔다. 돈을 내는 건지 안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          


“순대 내장도 줘요?” “아뇨, 간만 주세요.”     


아줌마의 또박또박한 간결한 말투에 나도 덩달아 즉흥적으로 대답이 나온다. 그렇게 나의 취향에 맞춰 순대와 간, 그리고 김밥 한 줄을 주셨다. 그러고 나서 선지해장국을 미니 뚝배기에 퍼서 주셨다. 그리고 조금 후에 양파 간장절임도 내오셨다.              


잘 차려진 분식 한상을 보니, 나의 불안은 깊어져만 갔다.

‘돈을 내라는 거 같은데...’     


뭐 어쨌든 아침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신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안 내고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슬금슬금 하나씩 천천히 집어먹으며 배를 채우고, 아줌마는 배달음식을 준비 중이시다.     


싹싹 다 먹고 나니, 아주머니는 배달음식을 주셨다. 들고 가라는 거긴 한데,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얼마 드려야 해요?”

“아니에요.”  

“아...네...잘 먹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단칼에 무 자르듯 핵심만 전달하신다. 그렇게 다행히(?) 돈을 받지 않으셔서 내 마음은 그 아주머니의 온기로 따뜻해지고 있다. 물건과 그에 상응하는 돈이 오가는 건 차갑고, 대가 없이 주는 건 따뜻하기 때문이다. 공짜로 먹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빚진 느낌이 들어, 다음에도 콜을 잘 잡아주어야겠다는 은혜로운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단점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잘 데워진 따뜻한 마음을 들고 손님에게 음식을 전달하니, 나도 모르게 그 순간 고객에게 맛있게 드시라는 부드럽고 친절한 말이 절로 나왔다. ‘따뜻한 마음은 이렇게 전해지는구나’라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물론, 아주머니께서 어떤 의도를 생각하고 하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가게의 따뜻함이 손님에게 전달되어 더욱 장사가 번창할 수 있고, 라이더에게 친절하니 라이더들은 더욱 그 가게에 가는 것이 빈번해질 것이다. 그러니 장사가 번창해서 더욱 가질 수 있게 되고, 사람이 모여드는 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덕경』에 그 말이 있다.     


旣以爲人(기이위인) 己愈有(기유유), 

旣以與人(기이여인) 己愈多(기유다).

다른 사람을 위함으로써 자신은 더 갖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데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



이것은 도덕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거나 준다는 것’은 것은 만물의 순환에 동참한다는 것을 말한다. 남을 위해 돈이나 물건을 주는 일은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갖게 되고, 더욱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플러스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톡으로 수다를 떨던 동료 역시 이 상황을 한마디의 말로 정리한다.

“역시 장사는 퍼줘야 돼.”

작가의 이전글 신중히 앞뒤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