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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Jul 26. 2019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논어

2019년 7월. 점심 피크타임에 배달일을 하고 늦은 3시쯤 점저를 먹는다. 주로 혼자 먹는 걸 좋아하고, 혼자 다니는 걸 즐겨한다. 같이 먹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고, 다만 누군가와 무엇을 먹을지 언제 만날지를 정하는 게 나에게는 번거로운 일이어서다. 대신 시간과 장소가 미리 정해져 있는 식사 자리는 꼬박꼬박 잘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왠지 그날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같이 먹을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보면 ‘요즘 내가 많이 외로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종로중구에서 제일 콜을 잘 빼는 형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우리 업소 중의 한 곳인 한솥도시락에서 먹는다고 했다.


그 형은 나보다 콜을 조금 더 잘 친다. 우리 둘은 『시경』의 환(還)이라는 시처럼 가끔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주고받으며 겸손 떨기를 즐겨 한다.     


“그래도 내가 X밥은 아니지 않냐?”

“아니지. 형이 나보다 더 잘하지.”

“아니야. 너도 한번 마음먹고 하면, 이 정도는 하잖아.”     


그렇게 배달 중에 심심하면 전화해서, 서로 얼마큼 벌었는지 확인하며, 지친 체력에 경쟁심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어? 그분은 안 왔네?”

“어. 오늘 별로 못 벌어서 집에서 먹는대.”     


그렇다. 그분은 제일 콜을 못 친다. 못 친다기보다도 모두가 기피하는 콜을 받아서 가기 때문에 많은 콜을 칠 수 없다. 픽업하고 배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명동이 그분의 주 서식지이다. 자신이 좋은 콜을 잡으려 하지 않고, 늘 관제에 요청해서 배차를 받는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며 그러고 다니기를 즐겨한다. 시급제도 아닌 건당으로 돈을 버는 지입제가 왜 저러고 다닐까 싶지만, 그게 그 사람 라이프 스타일이니 내가 더 왈가왈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취향 존중! ‘아...그래도 명동은 아닌데..’라며 내 성격상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혹시 집에 가서 혼자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의심을 주로 하는 내 스타일상 괜한 의심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오늘 벌이가 시원찮다고 하니까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자제하지 못하고, 혹시나 해 톡으로 확인을 해보았다.     


“오늘 가난해서 밥 먹으러 못 온다면서요?”

“ㅠㅠ”

“설마... 몰래 혼자 집에서...”     

가난에 대한 톡을 하다 보니, 『논어』에 나오는 ‘원헌’이 떠올랐다.     


원헌은 공자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데, 가난한 제자 중에서도 극도로 가난하기로 1등이셨던 분이다. 가난해서 옷이 떨어지고 구멍 난 신발을 신는 그런 초라한 행색을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그에 맞춰 행동하지 않고, 끼리끼리 작당해서 편 먹지 않고, 공부하긴 하지만 남들 앞에서 자랑하기 위해 하지 않는 등등의 자기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늘 그렇듯이 잠시 ‘내가 원헌인가’라고 끼워 맞춰 본다. ‘음...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경우 종종 나중에 생각해보면 늘 아니었으니까, 일단 아니라고 결론을 짓는다. 그래도 좀 가까운 느낌은 있다.     


나는 알바 생활로 어느 정도의 자유스러움을 지키면서 수입에 맞춰 살아왔다. 지금은 월급이 아니라 주급을 받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저번 주는 65만 원을 벌었다. 저저번 주는 37만 원. 저저저번 주는 50만 원. 저저저저번 주는 81만 원. 늘 수입이 들쑥날쑥하다. 저걸 다 합치면 4주 230만 원 정도로 꽤 수입이 괜찮지만, 어쨌든 지금 통장에는 10만 원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극빈의 생활을 자처하고 있다. 기상 후, 나의 일터이면서 주 서식지인 대학로로 이동한 다음, 한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삼각김밥을 하나 사 먹었다. 그리고 스벅에 가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가난한 현실을 깨닫고, 맥도날드에 가서 1,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설탕도 주고, 저어 먹을 플라스틱 빨대도 주니까, 스벅보다 편리하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도 이 글을 다 쓰고 나서는 아늑한 분위기의 스벅에 갈 요량이다. 가서 1,500원짜리 생수를 마시고 앉아 있으면 되니까. 또 그렇게 하도 생수를 사 먹다 보니, 어느덧 별 적립이 12개가 모여 무료 음료 쿠폰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 비싼 거로 하나 바꿔 먹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가난한 생활을 이어간다.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부자라도 형편에 맞게 하루 세 끼를 먹을 뿐이고, 맥심커피를 마시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든 어차피 커피를 마실 뿐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형편에 맞게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참고할만한 구절이 있다.     


貧而樂(빈이락).

가난하면서 도를 즐겨라.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는 건 공자의 제자인 안회의 주특기였다. 안회는 늘 가난했지만, 딱히 자신의 형편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가난한 현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가난함을 만난 때를 인정하고 난 후의 단계이다. 다시 말해, 가난을 숨기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당당히 인정하는 받아들임이 있고 나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도가의 대표주자인 장자 역시 가난했고, 그 역시 가난한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정말로 부끄러운 건 돈이 적다는 사실이 아니라, 떳떳하지 못한 행동으로 자기 마음마저 작게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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