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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Jul 26. 2019

내 여건 안에서의 최대치

논어 - 爲人謀而不忠乎

2019년 7월. 마른장마가 이어지던 그 날은 여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수중전을 하는 날인가 싶었는데, 아쉽게도 수중전이라고 할 정도로 비가 시원하게 내렸던 건 아니다. 날씨가 후덥지근한 상황에서 야금야금 내리는 비였다. 그래도 굳이 의자 밑에 챙겨둔 우비를 꺼내 입어 습기에 찌든 상태로 다니고 싶진 않았다. 아싸리 시원하게 내렸다면 우비를 입고 다녔을 텐데, 비가 애매하게 부슬부슬 내렸다.     


오늘도 대학로에서 돈이 되는 단거리 꿀콜을 잡고 다니며 놀고 있다. 그러던 도중 어느 한 배달지에 들를 때였다. 그 집은 명륜동을 구석구석 다니는 마을버스 종점보다 더 높은 고지에 있는 집 중 하나였다. 게다가 4층 집이었다. 거기에 더해 하필이면 이 집 저 집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또 4층 집을 만난 상황이었다. 체력이 급빠진 상태에서 4층 집을 또 만나니, 한숨과 함께 ‘아씨...’라는 말이 살짝 새어 나왔다. 몸이 힘드니까, 괜히 신경질이 나려 했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높이는 왜 콜비에 안 들어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료봉사의 발걸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계단을 올랐다. 다 올라가, 조금은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배달이요!”라고 외쳤다. 내가 왔음을 알리자, 집 안 사람들이 분주해져 정신없이 집 안을 오고 감이 들려왔다. 그래도 이 집안사람들은 행동이 민첩하니 그걸로 위안이 됐다. 그렇게 결제할 카드를 찾아들고 나와, 카드를 내미셨다.     


카드번호를 천천히 입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에 시스템이 바뀌어 오결제 방지 차원에서 카드번호를 똑같이 두 번 입력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빨리하다가 틀리면 다시 또 2번을 입력해야 하는 지루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나는 한 번에 정확하게 잘 결제해왔는데, 괜히 이런 오류 방지 시스템이 생겨서 불필요한 일만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하나하나 모든 일의 안전을 따지다 보면 결국 모두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에, 나같이 스피드를 중시하는 사람은 속이 터져 가끔은 짜증이 나곤 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잠깐의 시간이 누군가의 큰 사고를 예방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게 결제를 마치고 카드를 돌려드리려고 하는 순간, 그분께서는 갑자기 삼성페이 핸드폰을 내미셨다. 그 카드가 결제 오류인 줄 아시고, 다른 카드를 내미신 것이다. 나는 괜히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결제가 잘 되셨어요.”

내가 당황한 이유는 카드결제가 안 될 걸 대비해서 곧바로 삼성페이를 대기시켜 놓았음에 놀라서였다. 이분은 혹시나 해, 그사이에 다른 방법을 준비해두셨던 것이다.      


배달하러 다니다 보면 종종 이렇게 자신의 성의를 다해, 우리들의 시간과 체력을 아껴주시는 분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도착하자마자 귀신같이 알고 문을 열어주시는 분도 계시고, 인터폰을 누르면 애써 1층으로 부리나케 뛰어 내려오시는 분도 계시고, 5층에서 미리 조금 내려와 주시는 분도 계신다. 

어떤 손님은 “(계단) 힘드셨죠?”라고 위로의 말만 건네는 분도 계시는데, 나는 행동 없는 껍데기 말은 그게 사회적으로 예의 있는 말이더라도, 별로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네 좀 힘드네요.”라고 동의해 주며 그냥 흘려들을 뿐이다. 힘들 걸 알았다면. 몸소 움직이거나 최소한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도 뭐 문을 잽싸게 열어 빠른 일 처리를 보여주면, 시간을 아껴 나쁘지는 않지 않나 싶은 긍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가끔은 나도 계단을 내려오는 중에 ‘나도 5층 살면 자주 시켜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가장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경우가 있는데, 병원 복도에서 30m 거리를 두고 서로 빤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자기 앞까지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나는 상대가 답답해할 정도로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걸어가서 건네준다. 계단은 그래도 자기 몸 힘드니까 그렇다 쳐도, 평탄한 길에서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런 배달일을 해서 그런지, 그럴 때 사람 등급이 선명하게 보여 인간성을 판단하며 다니는 편이다. 잠깐 왔다 사라지는 배달원을 대우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등급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니까. 그것도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1:1로 있을 때 말이다.     


이런 상황들을 만날 때 떠오르는 논어 구절이 있다.      

爲人謀(위인모), 而不忠乎(이불충호).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을 도모할 때, 성의(忠)를 다했는가?



이 말은 유가의 계보를 잇는 증자가 했던 말이다. 유가의 계보는 공자에서 맹자로, 맹자에서 자사로, 자사에서 증자로 이어지고 있다고 문헌은 기록하고 있다. 증자는 날마다 세 가지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이 구절이다.     


자기 성실성이 한자로는 충(忠)이다. 현재 충성이라는 말로 활용되다 보니,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의미로 인식된다. 하지만 논어에서 쓰인 원래 의미는 다르다. 실제 의미에 가깝게 풀어보면, ‘다른 사람이나 어떤 사건을 대함에 있어, 자기 현재 여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실함’이다. 다시 말해, 다 포기하고 충성하는 맹목적인 최선이 아니라 내 여건 안에서의 최대치인 것이다.     


그렇게 그 사람이 왔을 때 일 처리를 위한 밑 준비의 성실함과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성실함 정도면 훌륭한 충(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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