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다 읽었다. 내가 클럽장으로 있는 트레바리 독서모임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 여섯 번째 시즌의 주제는 실재(實在, Reality)다.
위키피디아에서 실재를 검색해 보면, "실재란 인식 주체와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쉽게 풀어쓰면 "내가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쓸 수 있다. 내가 사라져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라니, 내가 사라지거나 죽어도 이 세상은, 이 우주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까?
이 주제는 매우 흥미롭고 재밌는 주제다. 그리고 이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철학의 오랜 주제인 실재에 대해 물리학의 언어로 답한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이 설명하는 실재는 놀랍다.
그런데 이 글은 양자역학이나 우주론이 아니라 라캉의 상징계에서 출발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이후 [보탬] 시즌6의 교재 용도로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물리학 입문서를 읽고 라캉 얘기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을 수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 아마 재미있을 것이다.
서울 중앙에 높이 솟아 정상에 타워가 세워진 땅 일부를 우리는 남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남산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남산인가? 남산 진입로부터 남산인가? 케이블카 요금소부터 남산인가? 남산의 지하 10m 지점은 남산인가? 누군가 남산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 집에 가져간다면 그는 남산의 일부를 소유한 것인가?
희한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마 쉽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분절되어 이름이 붙어있다. 이렇게 분절되어 이름이 붙어 있는 것들의 예제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면 대한민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영토인가? 구성원인 국민인가? 정부와 시스템인가? 혹은 역사인가?
재미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좋은 징조다. 이 질문들이 흥미로왔다면 이번엔 조금 더 심각한 질문을 해보자. 내가 손톱을 잘랐다면 나는 지금 나를 자른 것인가? 나는 오늘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고, 햄버거는 80일 안에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될 것인데, 햄버거는 소화의 어느 단계부터 나인가?
어라? 싶었다면 여러분은 상징으로 가득한 세계의 어떤 일면을 엿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나'라는 개념조차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세계는 실재가 아니다. 세계는 누군가 이름 붙인 상징의 체계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임의적인 것들에 누군가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상징이라니 조금 어려워졌는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대한민국부터 '나'의 존재까지,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부터 과학이나 종교, 철학 같은 학문들, 무언가를 거래하는 모든 경제 행위, 그러니까 우리가 이름을 붙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엄밀하지 않은, 어떤 흐릿한 개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가 이름 붙인 개념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모든 것에 이름이 붙여진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늘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름을 붙인 것들을 배우며 살아간다. (이 글의 범위는 아니지만, 이 이름을 붙이는 이를 라캉은 '대타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흐릿한 개념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세상에 존재했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배우고 그것이 정말 있는 것으로 믿어오고 있는 모든 개념들을 가리켜 라캉은 모두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상징계(Le Symbolique)'라 명명한다.
이제 맨 위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실재는 무엇인가? "실재란 인식 주체와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 대한민국이 통째로 소멸했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통화인 '원(won)'은 있는가? 대한민국이 없다면 당연히 그 국가의 통화도 없다. 대한민국의 통화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 자, 이번엔 스케일을 올려보자. 지구와 인류가 통째로 소멸했다고 하면 삼성전자는, 종교는, 남산 케이블카는, 햄버거나 손톱은 존재하는가?
이제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 이전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상징으로 가득한 곳이다.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실재가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누군가가 붙인 이름들이다. 이름을 붙이는 이들과 그것이 이름이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소멸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개념을 붙여서 간신히 존재하는 이 위태로운 상징들 외에, 우주엔 무엇이 있는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이것은 어떤가? 이마누엘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인식의 대상이나 인식 자체가 아니라 인식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조금 어려운 말인데 쉽게 풀어서 말하면 이러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 사과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인식의 대상인 사과를 인식의 주체인 내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면 그것으로 끝인가? 칸트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과가 거기에 있기 위해서는 나와 사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과, 사과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인식의 형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은 인식 주체인 나와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아도 되는가?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대상인 '사과'가 개념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나와 사과를 우주에서 소멸시킨다고 한다면, 그래도 객관적인 시간과 공간은 있는가?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은 실재라고 볼 수 있는가?
서두가 더 길었지만 바로 이 질문이 이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의 출발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장 놀라운 통찰은 시공, 그러니까 뉴턴의 시간과 공간이 곧 중력장이라는 것이다. 시공간 안에 중력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 자체가 중력장이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학적 문장을 한번 이해해 보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 일행은 블랙홀 근처에 있는 밀러 행성에 착륙한다.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이다. 그 행성에서 쿠퍼 일행은 예기치 않았던 사고를 만나고, 위기일발의 순간 쿠퍼는 밀러 행성을 간신히 탈출하여 모선에 착륙선을 도킹시킨다. 일행을 맞이한 동료는 “왜 이렇게 늦었느냐”라고 묻는다. 비로소 쿠퍼는 동료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알아차린다. 그 사이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가고,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이는 영화적인 상상이 아니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다. 당신 핸드폰에 있는 T맵 앱과 통신하고 있는 GPS 위성은 지상으로부터 2만 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리고 그 GPS 위성은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을 이용해 자신의 시간을 계속 수정하고 있다. 위성의 시간은 당신 핸드폰의 시간과 다르게 가기 때문이다. 이는 중력이 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곧 중력장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믿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하늘을 향해 테니스 공을 던져보자. 공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가 당신의 손을 향해 다시 떨어진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뉴턴의 세계관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지구의 중력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세계관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시간이 느린 곳으로 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공은 당신의 손을 떠나 중력이 약한 곳(공중)으로 가며 시간을 '번다'. 즉 공은 그 순간 당신의 시간보다 빠른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정점을 지난 공은 이제 번 시간을 써야 한다. 공은 이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방향을 향해', '최단거리로' 이동한다. 그래서 공은 지구의 중심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중력의 원리다.
당신이 땅에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의 발의 시간이 당신의 머리의 시간보다 느리게 가기 때문이다. 당신의 머리가, 몸통이, 좀 더 시간이 느린 방향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뉴턴의 관점에서는 공간이 중력 방향을 향해 굽어있다고 말하겠지만,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간 그 자체가 이미 중력장이기 때문에 당신은 지구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공 안에 중력장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공 자체가 중력장이다.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으며, 공간(뉴턴의 절대공간)은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하는 것은 분량상 무리가 있어, 아래에 다른 글을 링크하겠다.
10년 전쯤, 뉴스에서 '신의 입자'가 발견되었다며 떠들썩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 입자의 이름은 힉스 입자인데, 힉스 입자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도 쓰기 시작하면 한 바닥이지만 이 글의 범위는 아니니 다음번에 해보겠다.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이 학계에서 대단한 일이었던 것은, 실은 언론에서 얘기했듯 질량의 신비가 풀렸기 때문이 아니다. 이 발견이 의미 있는 것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이 설명하는 우주는, 우주를 구성하는 약 15개의 장(field)이 있으며, 이 모든 장에 대응하는 기본 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표준모형 방정식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못생겨서 물리학자들은 처음엔 이 표준모형이 어떤 모형의 중간 단계일 거라고 생각했다. 표준모형의 외형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방정식이나 맥스웰 방정식, 디랙 방정식 같은 방정식들이 가진 단순함과 아름다움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30년 동안 물리학계에서 발견된 모든 사건들은 이 못생긴 표준모형이 옳다는 증명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표준모형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것이 바로 힉스 장에 대응하는 힉스 입자였다. 이것이 그 발견의 의미다. 표준모형은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비로소 완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표준모형이 옳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표준모형이 말하는 우주는 놀랍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양자장뿐이고, 그래서 시공은 입자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입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거시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입자? 입자라니.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어떻게 시간을, 내가 늘 경험하는 이 생생한 현재를 구성해 낸단 말인가? 나는 당장 손을 뻗어 연속된 공간 속을 자유롭게 휘저을 수 있는데, 어떻게 이 공간이 작은 알갱이들로 분절된 비연속적인 것이란 말인가?
양자중력이론이 이야기하는 시공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놀랍지만 분량상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려고 한다. 이 뒷얘기가 궁금한 분이 있다면 이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다만 나는 이 긴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우리는 처음에 라캉의 상징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이름 붙인 상징의 세계, 즉 라캉의 상징계를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했다. 우주에서 인간이 이름 붙인 모든 상징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칸트에 의하면 최소한 시간과 공간은 남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그런데 물리학의 최신 논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실재에는 시간과 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이 얘기하는 세계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가지고 요동치는 세계다.
그렇다면 실재는 대체 무엇일까? 어떠한 가정을 하지 않고도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이 실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실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실재가 어떠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가 보고 있는, 살아가는 이 세계가 실재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 독서 모임,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 여섯 번째 시즌에서 우리는 네 번의 만남 동안 바로 이 [실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글이 부디 멤버들이 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개념인 [실재]를 향해 걸어가는 긴 여행에 좋은 출발점이 되기를.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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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완독. 점심시간에 짧은 감상을 남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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