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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Apr 08. 2024

관계적 우주론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다 읽었다.


너무 좋은 책이고,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담긴 책이다. 또한 너무나 내 취향을 저격한 책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을 읽을 분들이 많을 거라고 보는데,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 아무말이나 하기 보다는 카를로 로벨리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쉽게 풀어보는 독후감을 써 보겠다.


먼저 한 줄로 이 책을 요약하면, 책 내용은 책 제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 없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내가 죽으면 세상은 소멸한다는 뜻인가?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그 내부에 관찰자를 잉태해야 한다는 인류원리의 냄새가 나는 제목이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양자역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관점주의를 우주론으로 확장할 수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이하게 쓰여진 이 책의 이면에는 정말 깊은 철학적 함의가 깔려 있는데, 내가 쉽게 풀어 써 볼테니 궁금한 분은 천천히 따라오시기를 바란다. 역시나 좀 긴 글이 될 것이다.


양자역학은 정말 이상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점을 꼽자면 바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꼽아야 할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멀티 유니버스>에서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기막힌 비유를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날아가는 파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고 생각해보자. 카메라의 셔터스피드가 빨랐다면(노출 시간이 짧았다면) 화질은 선명할 것이고, 파리가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파리의 위치도 정확히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파리가 어느 쪽으로 날아가고 있는지, 어떤 속도로 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파리는 정지한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한다면 파리의 운동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파리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다. 카메라를 어떻게 조작해도 파리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려주는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너무나 기막힌 비유이지만, 이는 실은 엄밀한 기술은 아니다.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는 위치와 속도가 확정된 값을 갖지만 하나를 측정하면 다른 하나가 변하기 때문에 둘 다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양자 입자는 결코 완벽하게 결정된 위치와 속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자의 위치와 속도는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결정되며 그 결과 어느 한쪽은 불확정적일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이 이상한 양자의 특징에 대해 여러 가설들이 해석으로서 제안되었다. 그 중 정상과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코펜하겐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입자의 위치는 파동 방정식을 통해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2) 관측을 하면 입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지만, 관측 전엔 중첩된 상태(두개의 상태를 함께 가진 상태)로 존재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1)에는 별 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2)는 다르다. 이 (2)를 두고 물리학자들은 논쟁을 시작했다. 상자를 열지 않으면 그 안의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삶과 죽음이 '중첩' 상태로 놓여있다는 보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물론, 당시의 물리학자들에게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의 물리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코펜하겐 해석의 태두인 보어는 이어서 '우리는 자연을 영원히 알 수 없으며 과학은 자연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자연과 관측 수단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마치 과학의 종언을 선언하는 듯한 보어의 말에 과학자들은 발끈했다. 이렇게 코펜하겐 해석은 탄생할 때 부터 도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코펜하겐 해석은 보어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도, 자그마치 100년 동안이나 정상 과학으로 남아 있다. 코펜하겐 해석에 도전한 수 많은 다른 해석들은 모두 도전자로만 남았다.


코펜하겐 해석에 가장 거세게 도전했고,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은 해석 중 하나는 드브로이-봄 해석이라고 불리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다른 이름들이 많다. 숨은 변수 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파일럿 파동 해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빛의 입자-파동 이중성을 매우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이 해석은 매우 매력적인데, 이걸 소개했다가는 독후감이 하나 더 필요해질 것이라, 아래에 이 해석에 대해 내가 쓴 글을 링크하겠다.


또 다른 강력한 후보 중 하나는 다세계 해석(many-worlds-interpretation)이다. 나는 멀티유니버스 해석이라고 하겠다. 이 후보는 다소 낭만적이다. 우주가 무한히 많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든 상자를 여는 순간 우주는 분리된다. 하나의 우주에서는 고양이가 살아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고양이는 죽어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관찰하는 나도 당연히 분리된다.


스파이더맨 영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해석은, 실은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다. 아직 다세계(다중우주)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뿐, 물리학과 우주론은 외연을 확장해가는 여러 장면에서 필연적으로 다중우주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함의들을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다만 이 이야기도 자세히 쓰면 너무 길어질 거라, 아래에 이 해석에 대해 내가 쓴 글을 링크하겠다.


그 외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우주에서 모두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라고 말하는 결어긋남 해석, 양자 세계에서 양자 하나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의미 없고, 양자는 통계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앙상블 해석,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거래 해석 등 너무나 다양한 양자역학들의 해석이 있으나, 어쨌든 지금 소개한 모든 해석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코펜하겐 해석을 쓰러뜨리고 왕좌에 앉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수 많은 이론들의 거센 도전은 왜 계속 실패해온걸까? 이 책의 작가 카를로 로벨리는 오컴의 면도날을 꺼내든다. 코펜하겐 해석을 제외한 모든 해석들은 '필요 없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정상과학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 로벨리의 해설이다. (오컴의 면도날에 대해서는 아래에 내가 쓴 글을 다시 링크한다)


파일럿 파동 해석은 '파일럿파(pilot-wave)'를 가정한다. 파일럿 파동 해석은 입자가 '확률'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에 맞서, 입자는 파동 안에 감춰져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로벨리는 이 파일럿파를 관측하거나 검증해낼 수 없다는 지점을 지적한다. 파일럿파는 새로운 가정이다. 우리의 물리계에서 관측되지 않는 파일럿파를 전제로 양자역학을 해석하면,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물리적 실재를 가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이 로벨리의 생각이다.


멀티유니버스 해석도 마찬가지다. 우리 우주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우리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우주를 가정한다는 것은, 영원히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단 하나의 증거만 찾아도 멀티유니버스 해석은 정상과학이 될 수 있겠지만, 단 한개의 멀티유니버스도 관측될 가능성은 없다. 역시 관측할 수 없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 이론은 과학이 될 수 없으므로, 로벨리는 파일럿 파동 해석과 마찬가지로 멀티유니버스 해석도 폐기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이 남았는가? 카를로 로벨리는 이제 여기에서 자신의 이론인 관계적 양자역학(Relational Quantum Mechanics, RQM)을 꺼낸다. 이 이론은 카를로 로벨리 자신이 창안했고, 이후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확장되고 있는 최신의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그저 그대로, 있는 그대로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파일럿 파나 멀티유니버스 같은 새로운 가정을 하지 말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이 이상한 세계, 관측 전까지는 입자의 위치가 확률로만 존재하는 이상한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매번 하는 사과 이야기를 한번 더 하자. (지겹겠지만, 하이젠베르크 방정식 XP - PX = iℏ (ℏ는 플랑크상수) 을 가져다 놓고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조금만 참아보도록 하자)


태양이든 형광등이든 어딘가에서 발사된 광자가 사과의 표면과 만나서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튕겨 나온다. 광자는 파동이기도 한데, 이 때 튕겨 나온 광자의 파장 길이는 대략 750nm 정도가 된다. 이어 이 광자는 망막에 닿고, 시각세포는 이 750nm 길이의 파장을 특정 전기 신호로 바꾼다. 시신경을 따라 뇌까지 이 전기신호가 전달되면 뇌는 알아차린다. 아, 빨간색이로구나. 뇌는 눈도, 코도, 어떠한 감각기관도 갖고 있지 않다. 오로지 신체의 각 부분에 연결된 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를 받아들인다. 이 신호들이 종합과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 짜잔, 눈 앞에 빨간 사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빨간색'이 이 과정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광자의 파장 길이와 시각세포가 발생시킨 전기적 신호, 시신경이 이를 뇌에까지 운반하는 과정 그 어디에도 빨간색은 없다. 빨간색은 우리가 발생시킨 관념이다. 우리는 이렇게 인식과정을 통해 외부 세계를 우리의 내부로 가져온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관념의 세계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아래에 링크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로벨리는 묻는다. 사과가 없어도 그 빨간색은 있는가? 하고 말이다. 로벨리는 관념론을 비판하며, '대상이 없다면 그 빨간색도 없다'고 말한다. 즉 빨간색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과 사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번엔 방 불을 꺼 보자. 불을 꺼 어두워진 방에서 사과는 빨갛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희미한 광원에서 발사되어 사과 표면에서 반사된, 나와 사과를 관계시킨 광자는 내 망막에 닿을 때 750nm 길이의 파장이 되지 않는다. 이제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가는가? 빨간색은 나와 사과, 그리고 나와 사과를 매개한 광자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인 '빨간색'은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얘긴지 알 것 같다. 빨간색은 빨간색을 발생시킬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누군가 이 빨간색을 관찰해주어야지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양자역학으로 확장해보자.


입자의 위치를 계산해내는 파동함수 Ψ는 확률함수이다. 입자의 위치는 관찰 전까지는 알 수 없고, 코펜하겐 해석은 그래서 양자가 관측 전에는 '중첩'된 상태라고 말한다. 이제 관점을 바꾸어보자. 빨간색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양자도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각각의 양자가 스스로 파동함수 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호작용 가능한 다른 입자를 대상으로 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빨간색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과, 그리고 광자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놀라운 발상 아닌가? Ψ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Ψ는 누군가와 관계가 생길 때, 즉 관찰되거나 상호작용할 때 확정된다. 내가 관찰하기 전까지 사과는 빨간색인지 회색인지 확정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중첩'을 가정하지 않아도 된다. 결과는 상호작용 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상호작용을 기다리고 있는 수 많은 Ψ 뿐이다. 코펜하겐 해석이 갖고 있던 '필요 없는 부분'을 로벨리는 면도날로 이렇게 떼어낸다.


또한 이 관계적 양자역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놀라운 결론이 있다. 어떤 대상이 자신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모든 물체에 대해 각각 다른 Ψ를 가진다면, 이미 상호작용의 결과인 '사건'으로서의 입자는 이후 발생할 다른 입자의 Ψ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따라서 Ψ에 의해 기술되는 양자의 상태는 항상 상대적인 상태 뿐이다. 다르게 말하면 현재가 미래를 기술하지 않게 되는 것인데, 이 결론은 자유의지 없이도 미래는 비결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또 다른 놀라운 결론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글의 주제와는 좀 다르니 궁금한 분은 책을 읽어 보시길)


어쨌든 이렇게 세계는 관점 속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단일한 포괄적 시각은 양자의 세계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는 세계에, 이미 확정된 속성이나 단일한 사실을 가진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성은 대상과 대상의 관계 그 자체이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존재한다.


만약 초끈 이론이 옳다면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두가지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우주가 시간-공간 4차원이 아니라, 10차원이나 11차원이라는 것과, 멀티 유니버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계적 우주론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을 결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관계적 우주론이 말하는 것은, 결국 우주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입자는 순간 순간 다른 입자와 관계 맺으며 존재한다. 나도 당신도, 지구도, 태양계도 실은 실체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의 삶과 인생 속에서 본래는 아무것도 없는 우주와 세계를, 당신 내키는 대로 분절한 후 맥락으로 이어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그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결론은 더욱 놀랍게도 불교의 결론과 일치한다.


길가에 예쁜 꽃이 피었다. 이 꽃은 어떻게 피어나게 되었을까? 꽃이 있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因은 씨앗일 것이다. 꽃은 씨앗에서 자라난다. 그런데 씨앗만 있으면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꽃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흙, 태양과 공기, 물, 꿀벌이나 농부의 도움緣이 필요하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은 이처럼 인因과 연緣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다. 혼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며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면 놀라운 생각에 닿을 수 있다. 흙, 태양과 공기, 물, 꿀벌이나 농부의 도움은 확실히 있었다. 즉 인과 연은 있었다. 그런데 꽃은 있는가? 꽃과 씨앗 중 어느 것이 그 존재의 본질에 가까운가?


물 한 방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물방울은 잠시 후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었다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된다. 구름이 충분히 무거워지면 날씨에 따라 비, 눈, 우박이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물은 나무에 흡수되어 수액이 되었다가, 과일이 되어 인간에게 먹힌 다음 피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이것들 중 대체 ‘물’의 실체는 무엇인가?


비로소 우리는 놀라운 것을 깨닫는다. 인연은 있지만 실체는 없는 것이다. 흙, 태양과 공기, 물, 꿀벌이나 농부의 도움은 있지만 꽃은 없고, 과일이 인간에게 먹히는 행위는 있지만 물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인연에 따른 변화 뿐이다. 세상 만물은 인연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계속하여 변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결론이 아닌가? 2500년전 싯타르타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을 통해 얻은 우주와 자아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양자역학이 닐스 보어 이후 100년만에 도달한 결론이 같다니 말이다. 우주에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나도 당신도 세계도 우주도 마찬가지다. 그저 관계 속에서 끊임 없이 생성되고 변화하고 사라져가는 부질 없는 것들을 우리는 하나로 엮어서 나와 당신과 세계와 우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마치 나의 읽기 전체를 종합해 놓은 것 같은 책이었다. 양자역학과 뇌과학, 심리철학, 불교는 물론이고, 로벨리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칸트와 니체와... 수 많은 철학자들이 이 책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읽기 전체를 돌아 보게 되었다.


너무나 좋은 책이었어서, 이 책을 트레바리 클럽 [인생은 보탬은 안되지만] 시즌5 첫 책으로 선정하려고 한다. 다른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아주 쉽게 쓰여진, 그러나 정말 놀라운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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