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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Sep 28. 2023

달이 거기에 있는 건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인가

<이토록 기묘한 양자>, 존 그리빈



<이토록 기묘한 양자> 완독. 오늘 점심시간에는 이 책을 핑계로 양자역학에 대해 조금 써볼까 한다. 


양자(quantum)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물질의 기본 단위로서의 입자를 칭하는 일반 명사다. 양자의 종류는 하나가 아니다. 예를 들어 빛의 단일 양자는 광자(photon)라고 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물리학 시간에 그렇게 힘들게 씨름했던 전자(electron)도 양자다. 그 외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등 모든 입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러한 물질의 기본 단위 입자인 모든 입자들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연구하는 물리학의 분야가 양자역학(quantum physics)이다. 


양자역학이 물리학자들의 두뇌 놀음이라고 생각해왔다면 큰 오산이다. 당장 양자역학은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액정에 쓰인다. 컴퓨터, 노트북, 카메라, 형광등, LED, TV, 스마트 기기들은 물론이고, 헤드폰과 마이크에도 양자역학은 쓰이고 있다. 반도체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즉 ‘디지털’이 붙어 있는 곳에는 늘 양자역학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이 너무 자연스러워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양자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손 안에서 구동되고 있는 양자역학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말로 기묘하고 믿기 어렵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동작한다. 즉 양자역학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동작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양자역학의 특징이다. 이상한 것들이 많지만, 오늘은 그 중 딱 하나에 대해서만 써볼텐데, 그것은 양자가 기본적으로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둘 다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진짜다. 양자는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다. J. J. 톰슨은 전자가 입자임을 입증해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의 아들인 조지 톰슨은 전자가 파동임을 증명해 노벨상을 받았다. 이렇게 양자는 기묘하고 반전적이다. 


한 편, 보통 양자역학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현타가 탁 하고 오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 이 아닐까 싶다. ‘파동’이라니? ‘파동’이 뭐지? 이 이야기를 하려면 보통 영의 이중슬릿 실험 얘기를 꺼내야 하지만, 나는 엄밀한 물리학 텍스트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다소 오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하나 가져와 보겠다. 


바다 위에 어느 꼬마가 잃어버린 노란색 튜브가 떠 있다. 이 튜브를 커다란 파도가 삼켰는데, 그래서 이제 튜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파도가 해안선으로 밀려오자 이제 튜브가 모래밭에 나타났다. 상황이 상상이 되는가? 


이제 튜브가 파도 속에 감춰진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지금 튜브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파도는 ‘파동’처럼 해안선을 향해 밀려온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저 파도 속 어딘가에 튜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파도의 크기와 방향, 해안선의 길이와 모양을 고려했을 때, 어느 지점 정도에 튜브가 나타날 것이라고 확률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윽고 파도가 해안선에 도착하자, 우리가 짐작한 지점 근처에 튜브는 나타나는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튜브를 발견(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역학의 수 많은 이상한 점 중에서 단연 가장 이상한 점은, 양자는 관찰되기 전까지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관찰된 후에는 입자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주장을 한 사람이 바로 닐스 보어다. 입자는 고정된 위치를 가진다. 하지만 파동에겐 위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해안선으로 몰려오는 파도는 단 하나의 고정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확정되지 않은 입자의 위치를 확률로만 알 수 있는데, 이 확률을 구하는 함수를 파동함수(wave function)라고 한다. (관측되지 않는 동안은 확률함수로만 존재하는 입자의 위치가 관측 순간 확정되는 것을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인슈타인이 항변한다. 그럼 우리가 모두 달을 쳐다보지 않는 동안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닐스 보어와 그를 따르는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 달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관측하지 않으면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한다. (코펜하겐 학파의 수장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에서 태어나서 죽었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른다) 이 이상해 보이는 해석은 지난 100년 동안 정상과학이었고, 지금도 정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단 현대의 과학자들은 코펜하겐 해석을 양자역학에 대한 가장 정석적인 해석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닐스 보어의 이론이 ‘해석’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 해석은 코펜하겐 법칙이라고 불리지 않고, 코펜하겐 이론이나 코펜하겐 가설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양자가 기본적으로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둘 다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확정되지 않은 입자의 위치를 확률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은 닐스 보어의 ‘해석’일 뿐이다. 이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해석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 <이토록 기묘한 양자>에는 코펜하겐 해석을 비롯해, 양자역학에 대한 여섯개의 해석이 요약되어 있다. 이 해석들 중 몇 개를 소개해 보겠다. 


먼저 파일럿 파동 해석(pilot wave interpretation)이 있다. 실은 내가 위에 소개한 노란 튜브와 파도에 대한 설명이 바로 이 파일럿 파동 해석으로 해석한 양자역학의 작동 방식이다. (그만큼 직관적이기 때문에 양자의 입자-파동 이중성을 이해하기도 쉽다) 드 브로이-봄 해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해석의 핵심은, 파도가 튜브를 해변으로 데려오듯, 파동이 입자를 목적지까지 안내한다는 것이다. 즉 파일럿 파동 해석에 의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입자는 이미 존재한다. 모든 입자는 명확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측정 전까지는 그 속성을 모를 뿐이다. 포커 카드 한 벌을 섞어 한 장을 앞에 내려 놔 보자. 뒤집기 전까지는 그 카드가 무슨 카드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코펜하겐 해석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또 다른 하나는 다세계 해석(many world interpretation)이다. 보통 다세계는 휴 에버렛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의 작가 존 그리빈은 슈뢰딩거가 다세계 해석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본다. 슈뢰딩거는 파동 함수를 유도한 장본인이지만, 자신이 만든 파동함수가 ‘붕괴’를 통해 코펜하겐 해석이 되는 것을 (심지어 정상과학이 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슈뢰딩거는 보어 진영을 향해 파동함수는 물론, 양자역학의 어떠한 방정식에도 붕괴를 예고하는 설명은 없다고 항변한다.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여기에서 등장하는데,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관측되지 않은 독가스 발사기와 함께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고양이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이다. (정확히는 죽음과 삶의 ‘중첩’상태에 있다고 하지만, 이 문서에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다세계 해석의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상자를 여는 순간 우주는 분리된다. 어떤 우주에서 고양이는 살아 있고, 어떤 우주에서는 죽는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해석은, 실은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다. 아직 다세계(다중우주)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뿐, 물리학과 우주론은 외연을 확장해가는 여러 장면에서 필연적으로 다중우주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함의들을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관련한 문서를 아래에 링크한다) 


그 외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우주에서 모두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라고 말하는 결어긋남 해석이나, 양자 세계에서 양자 하나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의미 없고, 양자는 통계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앙상블 해석도 있으며,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거래 해석도 등장하지만, 이를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분량 관계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더 궁금한 분은 이 책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코펜하겐 해석은 완성된지 100년이나 된, 오래된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해석에 국한해서 말하면, 우리는 정상과학이 도전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패러다임의 전복 시도가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각자의 책에서 조금씩 다른 양자역학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등과학원 박권 교수님은 본인의 저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에서 결어긋남과 결정적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리 스몰린은 <아인슈타인처럼 양자역학하기>에서 유한 우주와 앙상블 해석에 대해 설명한다. 


왜 물리학자들이 저마다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조금씩 달랐는지 궁금했다면, 이 책을 읽으며 그 궁금증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양자역학 입문서를 두어권 정도는 읽어 뒀어야 쉽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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