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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불가능

by 이상균
dima-pechurin-oBZRJEETU-o-unsplash.jpg ⓒ Dima Pechurin / unsplash.com


술자리에서 서너 명의 친구들과 대화할 때,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대화를 관조해 본 적이 있는가?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대화를 지켜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첫째로, 누군가 말을 완전히 마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누군가 말이 끝나기 전에 꼭 다음 사람이 대화에 뛰어든다. 늘 말은 중간에 끊인다. 말이 끊긴 주체는 잠시 당황하지만 그건 순간적인 것일 뿐, 그도 곧 두 번째 멤버의 말에 집중한다. 그러나 두 번째 멤버도 대화를 마치지는 못한다. 세 번째 멤버가 그의 말을 자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대화에 집중할수록, 이러한 일은 더욱 자주 일어난다.


이렇게 대화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화는 한 맥락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지지 않는다. 마치 정신분석기법에서 사용하는 자유연상법처럼,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구부러지고 꺾이며 이어진다. (그래서 집중해야 하는 맥락이 필요한 토론 등에는 반드시 사회자가 참여하는 것이다)


내 경우엔 가끔, 누군가가 끝까지 듣고 싶은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중간에서 자르려고 하면 잠시 그를 제지하곤 한다. 그럴 때는 나는 "끝까지 들어보고요."라며 양해를 구한다. 순간적으로 사회자 역할을 맡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마쳐지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정리에 나서야 간신히 가능하다. 대화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하고픈 말을 끝까지 하는 경우는 없는가? 이것도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고픈 말을 끝까지 하는 경우는 두어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말하는 이가 권력자인 경우인데, 누군가가 감히 그의 말을 끊을 수가 없어 모두가 그냥 두는 경우다.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이 말씀을 하실 때나 교장 선생님이 훈화말씀을 하실 때, 부모님이 꾸중을 하실 때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두 번째 경우는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누군가 하는 경우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상, 여행, 공부, 육아. 혹은 책, 예술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 어디에도 누군가 끊고 들어갈 만한 관심 있는 단어, 사물, 장소,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는 말을 마칠 수 있다.


관찰해 보면 더 재밌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누군가 말을 끝까지 마치는 경우 대개는 침묵이 이어진다. 그 대화를 끝까지 경청한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대화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고, 나 역시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 줄 정도로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 인연은 그래서 꼭 붙잡아야 하는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장담컨대 그런 상대는 당신 평생 한 손에 꼽을 정도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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