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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더 사랑해야 한다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라크

by 이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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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독후감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연휴 첫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연휴에 이것들을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연휴에 다른 일정도 잡지 않았고, 내내 비도 온다고 하니 도서관에 파묻혀 책장 뒤적이고 자판 두들기기 좋은 시간이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은 SF의 고전 중 고전이고, 너무나 많은 SF 작품들이 이 작품을 오마쥬 하고 있기 때문에 <유년기의 끝>을 읽지 않은 분들도 내용은 대강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 읽고 난 후 느낌은 상상과는 좀 달랐는데, 독후감으로 읽고 내가 이해한 아서 클라크의 의도를 아래에 남기겠다. 다만 아래에는 당연히 원작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인디펜던스 데이(1996)>, <컨택트(2006)> 등 많은 SF 작품은 거대한 외계 비행선이 인류의 대도시 상공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SF 장르에서 반복되는 이 충격적인 첫 장면의 원조가 바로 이 작품, <유년기의 끝>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 종족은 지구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침략자로 그려지고, <컨택트>에서 외계 종족은 인류와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로 그려진다. (<컨택트>의 원작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원조인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외계 종족은 다소 낭만적이다. 아서 클라크는 이 외계 종족을 인류의 구원자로 그렸다.


인류 문명을 까마득히 초월한 미래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인류는 오버로드(Overload)라고 불렀다. 오버로드는 UN과 협상을 시작했고, 지금부터 인류를 자신들이 관리하겠다고 한다. 오버로드는 모든 종류의 차별과 학대를 금지했다. 즉시 세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과 범죄와 기아가 사라졌다.


IMG_0129.png 오버로드는 날개와 양의 뿔을 가진, 전통적인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오버로드는 인류가 유년기를 마치고 정신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화할 준비가 거의 끝난 생태인데, 전쟁 때문에 진화에 이르지 못하고 파멸할 운명인 것을 보고 개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인류의 정신적 진화를 기다리는 동안, 오버로드는 지구에 평화와 유토피아를 강림시킨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고, 오버로드의 예언대로 인류는 다음 단계의 정신체로 진화한다. 물리적 인류는 소멸한다. 정신 능력을 각성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은 하나의 통합 정신체가 되어 먼 우주 건너에 있는 하나의 통합 정신, 오버마인드(Overmind)와 융합하기 위해 태양계를 떠난다. 오버로드의 도움으로 인류는 이렇게 유년기를 마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유년기의 끝>이다.




어렸을 때는 <유년기의 끝>의 유명한 엔딩이 일종의 종말론을 담은 묵시록인 줄 알았다. 그리고 무서운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모든 개체가 소멸하고 정신이 하나로 융합되어 우주 건너 미지의 존재와 합일한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엔딩 아닌가? 아서 클라크의 상상력은 엄청나다고 쳐도 말이다.


이 충격적인 엔딩은 정말 수많은 작품들에서, 특히 서브컬처 계열에서 오마주 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인류 보완계획은 명백히 <유년기의 끝>의 영향을 받았다.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의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는 물론 <유년기의 끝>에서 고유명사를 빌려온 것이다. <니어: 오토마타>의 엔딩 중 하나의 제목은 아예 <유년기의 끝>이다.


아서 클라크는 왜 이런 엔딩을 생각해 냈을까? 이런 엔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 위키 등을 보면 낙타-사자-어린아이로 이어지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인간 정신 발달의 세 단계에 대한 은유라는 해석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는 니체를 잘못 읽은 것이다. 니체의 초인은 일종의 상태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된 정신체가 초인의 최종 상태라고 한다면 니체는 벌컥 화를 낼 것이다. 니체는 초인을 완성된 무엇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초인은 늘 자신을 초월하는 자이다. 완성된 무엇이 아니다. (이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으면 감각으로 시작해 주관정신, 객관정신을 지나 정신진화의 최종 형태에 절대정신이 있는 헤겔을 가져오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니체나 헤겔 보다는, 내가 보기엔 <유년기의 끝>에 나타난 아서 클라크의 의도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과 닮았다.




IMG_0127.jpeg NASA 제공


태양계를 벗어나 태양계 밖의 우주를 항해할 목적으로 발사된 보이저가 카이퍼벨트를 통과하기 전, 그러니까 태양계와 작별하기 직전에 칼 세이건은 NASA 보이저팀에 담대한 제안을 한다. 보이저를 회전시켜 지구의 사진을 찍어보자는 것이었다.


매우 모험적인 도전이었지만 NASA의 엔지니어들은 그 일을 해냈다. (이 이야기는 아래에 자세한 내용을 링크해 놓겠다) 그 사진이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이다. 사진 중앙에 아주 작게 찍힌 점이 바로 지구다.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와 같이 썼다.


"보라, 저것이 지구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들, 기쁨과 고통, 신앙과 이데올로기, 모든 문명과 그 파괴자들이 저 티끌 위에 살았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정치인과 슈퍼스타, 인간 역사의 모든 성인들과 죄인들이 저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저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태어나 그 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작은 존재다. 우리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찰나의 순간을 살다 죽는다. 칼 세이건은 이 작은 티끌들에게, 너희들은 사랑하며 살아가기에도 너무 짧은 순간을 살뿐이니, 자신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애정을 갖고 대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유년기의 끝>이 출간된 것은 1953년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가 양분되어 끝없이 군비를 증강하던 냉전시대 초입이다.


오버로드의 기술과 과학은 인류의 이해를 까마득하게 넘은 것이다. 그런데 오버로드는 자신들은 신이 아니고, 자신보다 더 우월한 존재인 오버마인드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신 위에 또 다른 신이 있는 셈이다.


태양계 바깥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성은 4광년 떨어진 알파 센타우리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먼 별은 2022년에 발견된 에렌델(Earendel)로, 지구에서 129억 광년 떨어져 있다. 우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광대하다. 이 엄청난 우주에 비하면 인류와 지구 문명은 너무 작고 초라하며 찰나적인 것이다. 오버로드와 오버마인드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인류의 초라함과 덧없음을 깨닫는다.


오버로드의 등장은 지구 위의 모든 전쟁과 학대와 기아를 없앴다. 우리는 전쟁과 학대와 기아를 당연히 어딘가에 있을 수밖에 없는 무엇으로 생각하지만, 전쟁과 학대와 기아는 우주의 스케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하루살이들이 싸우고 질투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차피 하루를 살고 죽을 텐데 왜 이 짧은 삶을 누구를 미워하며 사는가? 오버로드는 그래서 인간들에게 전쟁과 학대와 기아를 금지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전쟁과 학대와 기아가 금지된 강박적인 세계는 건강한가? 하고 묻는 라캉의 관점을 더 좋아하기는 한다)


즉 <유년기의 끝>에서 아서 클라크가 하고 싶었던 말도 칼 세이건의 말과 유사하다.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 작은 지구 위에서 태어나 그 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존재다. 140억 년 우주의 역사에 문명이 관찰된 것은 수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 기적을 그저 사랑하고 즐기지 못하고, 전쟁을 하고, 군비를 증강하고, 서로 미워하는가? 누군가는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 매도하고, 누군가는 자본주의자들을 혁명 반동분자로 몰아가는가? 오버로드의 관점에서는 한낱 하찮은 이데올로기를, 우주 역사에 고작 백 년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티끌 같은 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죽이려 드는가?


인류는 서로를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고, 이 기적으로서의 삶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주변의 불행을, 굶주리는 자를 돌볼 필요가 있다고 아서 클라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군비경쟁을 멈추고, 학대와 기아를 해결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유년기의 끝>은 인간의 정신적 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내가 볼 때 아서 클라크는 휴머니즘적 담론을 이 책에 담고 싶어 했다.




사실 나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고 싶었다. 원래 이 독후감에 붙였던 제목은 <인류라는 유년, 지구라는 상상계>였다. 나는 오버로드를 대타자에 위치시킨 다음, 인류 전체가 거세의 과정을 통해 지구라는 상상계를 떠나 우주라는 상징계로 진입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독후감을 쓸까 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길어져버려서 여기에서 마치려고 한다.


연휴에 써야 할 독후감에 네 개다. 일단 한 개를 썼다. 나머지는 내일 계속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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