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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혹은 우주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by 이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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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윤성철 교수님의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를 다 읽었다. 추천을 먼저 하고 시작한다. 우주에 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언젠가 읽겠다 마음먹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이 책은 정말 쉽게 쓰인 우주론 입문서인 동시에, 인간의 기원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철학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포리즘은 '초인은 패배하여 사라져 가는 자(者)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과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포리즘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교수님은 우주론의 오래된 아포리즘을 이 책의 제목으로 쓰셨다.


이 아포리즘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은 주저인 <코스모스>에 'We are made of star-stuff.'라고 썼다. 직역하면 '우리는 별-물질로 만들어졌다' 정도 되는데, 한국 과학자들은 이를 낭만적으로 다듬어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라고 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이 글에서 이 아포리즘을 이해해 볼 것인데, 먼저 예고하면 이 아름다운 문장은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과학적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모든 것은 원소로 되어 있다. 우리 인간들,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 나무와 꽃 같은 식물들, 이러한 유기체들은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인(P), 황(S)으로 되어 있다. 흙은 산소, 규소(Si), 알루미늄(Al), 철(Fe) 등으로 되어 있고, 알다시피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전부 원소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탄소나 산소, 질소와 같은 원소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는 수소다. 너무 가벼워서 지구의 중력에 붙잡히지 않기에 수소는 지구상에서는 자연상태로 쉽게 발견되지는 않는다.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소는 전체 우주의 92%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수소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우주가 탄생한 순간, 그러니까 빅뱅의 순간엔 원소들이 없었다. 빅뱅의 순간 우주의 온도는 무한대에 가까웠다. 원자핵과 전자는 강한 핵력이라고 하는 힘으로 묶여 물질로 존재할 수 있는데, 온도가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높으면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묶여 있지 못하고 완전히 분리된다. 심지어 원자핵조차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도 기본 입자인 쿼크로 분해된다. 이렇게 쿼크와 전자등 기본 입자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고 자유롭게 이동했던 초기의 우주를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섞여 있는 수프에 빗대 원시 수프(Primordial Soup)라고 부른다.


빅뱅으로부터 38만 년이 지나면 우주의 온도가 3천도 정도(정확히는 3천 켈빈온도)로 낮아지는데, 온도가 낮아지면 입자들의 에너지도 함께 낮아지고, 그 힘이 강한 핵력을 넘지 못하게 되면 입자들은 결합한다. 양성자 한 개와 전자 한 개가 결합하면 수소가 만들어지고, 양성자 두 개와 전자 두 개가 결합하면 헬륨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 원자들은 중력에 의해 서로 이끌려 분자 구름을 형성한다. 분자 구름은 다른 분자 구름과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점점 거대해지고, 어느 수준의 밀도 이상이 되면 내부의 중력 때문에 수축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별이 탄생한다.


수축을 거듭할수록 별 내부의 밀도는 증가하고, 밀도가 증가하면 내부의 온도가 상승한다. 온도가 1500만 도를 넘으면 별 내부에서 수소 원자 4개가 합쳐져 헬륨(He)이 된다. 이것을 핵융합이라고 한다. 수소 원자 4개보다 헬륨 1개의 질량이 조금 가벼운데, 그래서 핵융합이 진행되면 별은 질량을 잃는다. 이 잃어버린 질량이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가 바로 햇볕을 통해 지구에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방정식이 아인슈타인의 E=mc², 질량-에너지 동등성 방정식이다)




1440px-Iades_and_Pleiades_(32446251210).jpg 대표적인 적색거성인 황소자리 알데바란. 오른쪽 아래의 붉은 별이다. 겨울철에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NASA 제공


하지만 아무리 수소가 많더라도 언젠가 별은 자신의 수소를 모두 소비한다. 수소 대부분이 헬륨으로 변해버리면 별은 이제 수소 대신 헬륨 자체를 태우기 시작한다. 이때 별 내부의 온도는 1억 도에 달하고, 별은 이전의 수백 혹은 수천 배의 크기로 커지며 붉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이것이 적색거성이다.


우리 태양계의 유일한 별인 태양은 46억 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계속해서 수소를 태워 헬륨을 만드는 방식으로 별로써 존재한다. 태양의 중심 온도는 아직 1500만 도를 유지하고 있다. 태양이 소비한 수소는 전체의 절반 정도인데, 그래서 앞으로 5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은 모든 수소를 소진하게 된다.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이 지나면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킬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50억 년 후의 지구에 태어났다면 생명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기적 속에서 살고 있다)


적색거성이 헬륨 3개를 태워 핵융합하면 탄소 1개가 탄생한다.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어서 온도가 더 높아지면 네온(Ne)이, 산소(O)가, 규소(Si)가, 철(Fe)이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조금 특별한 원소가 바로 철인데, 철은 우주에서 가장 안정된 원소로 더 이상 핵융합 반응에 참여하지 않는다. 철로 만들어진 핵을 가지게 된 적색거성은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적색거성은 한순간에 수축, 붕괴한다. 폭발하는 것이다.


이 폭발한 별이 바로 초신성이다. 초신성이 탄생하며 지금까지 별 내부에서 만들어진 수소, 헬륨, 탄소, 네온, 산소, 규소, 철 등의 원소등이 우주로 흩어진다.




1080px-Crab_Nebula.jpg 게 성운, 대표적인 초신성의 잔해다. By NASA, ESA, J. Hester and A. Loll (Arizona State University), Public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산소, 탄소, 규소, 철 등의 원소뿐 아니라 황, 인, 구리, 니켈, 아연과 같은 중금속들도 이렇게 다양한 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들은 이렇게 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별의 탄생과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원소들은 초신성의 폭발, 그러니까 별의 죽음을 통해 우주로 퍼져나간다. 원소들은 각자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이라는 말이 다소 낭만적으로 들렸는가? 하지만 남은 이야기를 하려면 낭만적이 될 수밖에 없다.


위에서 우리 인간들,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 나무와 꽃 같은 식물들, 이러한 유기체들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 황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흙은 산소, 규소, 알루미늄, 철 등으로 되어 있고, 알다시피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했지만 태양은 아직 수소를 태워 헬륨을 만드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겠는가?


아직 적색거성이 되지 않은 태양은 탄소를, 산소를, 규소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 지구에 있는 모든 유기체와 흙과 물, 당신과 나와 이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원소는 태양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양계 바깥에서 온 것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인데,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으로 앞으로 4조 년 동안 헬륨만을 생성할 예정이다. 우리는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먼 별에서 온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탄소는, 산소는, 질소는 수천만 년, 혹은 수십억 년 동안 우리가 되기 위해 여행을 했을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 이보다 더 놀라운 얘기를 들어 보았는가? 이 글을 읽기 위해 만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액정은 규소(Si)로 되어 있는데, 대체 얼마나 먼 별에서 온 걸까? 내가 마시고 있는 와인을 구성하는 산소는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오랜 여행을 거쳐 지구에까지 왔을까? 그리고 내 손가락 끝을 구성하는 탄소는 저 하늘에 빛나는 별 중 대체 어느 별에서 온 것일까?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기적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매일 별을 마시고, 별을 먹고, 별을 만지며 별의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라는 이 책의 제목, 혹은 과학적 아포리즘이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별에서 왔다. 인류의 기원은 저 멀리에 빛나는 별들인 것이다.




이 책,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서울대 교양수업 <인간과 우주> 강의 텍스트의 요약본이라고 한다. (윤성철 교수님이 책 안에 그렇게 쓰셨다) 나는 정말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후감에 이 제목을 조금 수정해서 '인간 혹은 우주'라고 제목을 붙였다.


인간은 실은 우주다. 인간은 우주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우주라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정말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우주라는 근원적 일자의 임의적 양태다. 우리는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우주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이야기는 또 긴 이야기라서 다른 글에서 써 보도록 하겠다.


이 독후감은 트레바리 클럽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 모임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썼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쓰려고 했고, 그래서 내용이 좀 길어졌다. 이런 변명을 붙여 두고 길어진 글을 마친다.



https://brunch.co.kr/@iyooh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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