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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4) 죄의식의 기원

<도덕의 계보> 2논문, <죄, 양심의 가책 및 기타>

by 이상균

우리는 (1)편에서 도덕의 계보 1논문을 살펴보고 놀랍게도 선악이 발명된 개념임을 알았다.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소개한 적이 없음에도 사도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날조하여 그리스도교를 원한과 복수의 종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았다. 이 이야기는 정말 놀라운 이야기지만, <도덕의 계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니체는 이제 양심을 문제 삼는다.


양을 낚아챈 독수리는 양을 동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비 오는 날 길거리에 주인 없는 강아지가 버려져 있으면 바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것을 줍지 않았음에 죄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왜 이러한 마음, 그러니까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양심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놀라운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니체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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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71.jpeg 이마누엘 칸트 (1724~1804)


근대 이전까지 우리가 가진 양심은 대개는 신의 명령으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신이 인간의 내면에 '초월적 도덕 법칙'을 새겼고, 그렇게 우리가 양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오랜 믿음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칸트다.


칸트는 그 도덕 법칙이 있지만, 그걸 새긴 것은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칸트에게 양심이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은 모두 내면의 법정(innere Gerichtshof)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인간 각자가 자신의 행위를 직접 심판한다고 말한다. 칸트에게 양심이란 이성적 도덕이다. 칸트는 신의 도움 없이도 인간에게 어떻게 양심이 가능한지 설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신이 새겼든, 인간이 스스로 심판하든, 그리스도교의 양심이든 칸트의 양심이든 결국 양심은 인간의 내부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 전제를 처음부터 박살내고 시작한다. 선악이 우리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왔듯, 니체에게 양심은 외부에서 온 것이다. 양심은 신의 말씀도, 우리 내면의 심판도 아닌 것이다.



IMG_0181.JPG 사진: Unsplash의 Bogdan Cotos


지구상에서 사피엔스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 중 하나는 약속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친구하고 한잔 하기로 하는 것만이 약속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약속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우리는 9시까지 출근하고, 12시에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 지하철을 탈 때는 정해진 요금을 지불하고, 차량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면 탑승한다. 이것들은 모두 약속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약속이라는 것조차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약속을 지킨다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신 다음 날, 우리는 9시에 출근하고 싶지 않아 진다. 억지로 출근을 했지만 11시에 이미 해장국이 간절하다. 우리는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고, 감정과 욕망이 있는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이미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는 억지로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약속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원시인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았던 시절에 약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면, 원시인들은 어떻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까?


니체는 원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똑같이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기억 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기억할 수도 없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약속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지키게 하기 위해 신체에 고통을 가했다.


부락의 공동 식량 창고에서 음식물을 도둑질한자는 돌로 쳐 죽인다. 다른 부락민의 사유물을 도둑질한 자는 도둑질을 한 손을 자른다. 원시 부락의 규칙은 이러했을 것이다. 돌로 쳐 죽이고, 사지를 절단하고, 끓는 물에 삼고, 살가죽을 발라내는 이러한 형벌들이 약속의 개념을 부락민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존재했을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쓴다.


어떻게 해서 인간이라는 동물에 기억을 심을 수 있었을까? 이 태곳적 문제는 부드러운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것이 기억이 남으려면 그것은 끊임없는 고통을 주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에게 기억을 새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항상 피나 고문, 희생을 수반하였다.

범죄자를 돌로 쳐 죽이고, 사지를 절단하고, 끓는 물에 삶고, 살가죽을 발라 죽이는 형벌들은 '나는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 덕분에 인간은 마침내 '이성'에 이르렀다. 아, 이성! 인간의 특권! 우리는 이것을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는가?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팔다리를 절단하고, 눈알을 뽑고, 혀를 자르고, 어깨에 말뚝을 박고. 이러한 고통을 겪고 나서야, 혹은 타인들이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며 비로소 약속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온갖 야만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인간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동물'로 만들어온 훈육의 과정이었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자, 이제 인간은 훈육되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양심의 단계는 아니다. 현재 단계의 인간은 그저 육체적 형벌이 두려워 약속을 지킬 뿐, 내면의 죄의식이 약속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죄의식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죄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죄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죄는 누가 규정했을까? 니체는 다시 계보학을 꺼내 들고 죄의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죄(Schuld)라는 개념이 빚(Shulden)이라는 물질적 개념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형벌은 자유의지에 대한 어떤 전제와 관련 없이, 일종의 보복으로서 발전해 왔다. 선사시대를 살펴보면, 악행을 범한 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형벌을 받았던 적은 없었으며, 따라서 죄가 있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는 개념도 없었다.

오히려 형벌은 가해자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해 가해졌다. 즉 그 힘의 출처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계약관계에 있다. 채무자는 자신의 빚에 대한 보증을 위해 자신이 소유한 것, 자신의 신체나 아내, 자식, 자신의 자유나 심지어 생명조차 저당을 잡힐 것을 계약한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덤 속의 평안까지 저당 잡힐 수 있었다. 피라미드를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이러한 안식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신체에 온갖 모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사지 하나하나, 신체 각 부분에 대한, 정밀한 가격사정이 합법적으로 행해졌다. 로마의 12표법에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한 경우, 채권자가 잘라낼 수 있는 신체 분량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선포했을 때, 나는 이것이 진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형벌은 채권자에게는 일종의 쾌감으로서의 보상으로 동작한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무력한 자에게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는 쾌감이며, '악을 저지르는' 쾌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쾌감은 채권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그리고 채무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잘 동작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벌'을 가함으로써 일종의 지배권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후에 형벌 집행권이 '당국(정부)'에 넘어갔을 때에도, 이 처벌을 지켜보는 우월감만은 보장되었다.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죄를 의미하는 독일어 Schuld가 빚이라는 독일어 Shulden에서 기인했다고 보았다. 즉 죄는 처음엔 유물적인 의미였다.


누군가 돈을 빌려가 갚지 않으면 우리는 자료를 모아 법원에 가압류요청을 할 수도 있고, 사기죄의 요건이 성립한다면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법원이 없었다. 니체가 파내려 간 죄의 역사에는 법원 대신 담보가 있었다.


옛날 채무자들은 빚을 갚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담보로 제공했다. 자신의 신체 일부 혹은 전체, 아내나 자식, 생명 같은 것들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문서에서 니체는 어떤 채무자가 죽은 후의 안식까지 담보로 제공하는 장면을 찾아낸다.


IMG_0182.JPG 피라미드를 생각하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후의 안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by Jeremi Bishop / unsplash.com


만약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는 약속 대로 그 담보를 가져간다. 사지를 잘라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노예로 가져갔다. 그런데 가장 흔하고 제공되는 담보는 신체 일부였던 것 같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채무자의 팔다리를 잘랐다.


로마 12표법에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한 경우, 채권자가 잘라낼 수 있는 신체 분량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채무자가 팔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 대개의 채권자들은 대개 어깨에서부터 팔을 잘라내려 했고,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팔꿈치 정도에서 자르자고 한 것이다. 그것을 두고 다투니까 로마는 '그것으로 다투지 말라'라고 법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누군가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쾌락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우월감을 확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후에 법이 개입하여 형벌 집행권이 당국에 넘어간 후에도 처벌을 지켜보는 권리만큼은 보장되었다. 한국에서는 사형 집행이 비공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만, 미국의 상당수 주에서는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가족(유족)의 사형 집행 참관이 여전히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여기까지, 이것이 니체가 밝힌 죄의 정체다. 최초에 죄는 빚이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유물적 계약관계가 있었고, 그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죄였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의식, 그러니까 신체 상실에 대한 공포가 죄의식과 양심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내면의 법정이 이성적으로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이러한 잔인한 비이성적 형벌의 산물로서 양심이 탄생한다. 양심은 신이 인간의 내면에 새겨준 것도, 인간이 내면의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양심이란 신체 일부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양심은 우리의 내면이 아니라 우리의 외부에서 강제되는, 이성과 관계없는 대단히 비이성적인 무엇이었던 것이다.


칸트가 신의 시대를 끝냈듯, 니체는 이 지점에서 칸트의 시대를 끝낸다.




실은 양심의 획득 과정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이후로도 더 있다. 니체는 외부로 발산할 수 없는 노예의 공격성이 자신을 향하게 되며 마조히즘적 양심의 가책으로 바뀌고, 권력자가 법을 발명함으로써 채무자와 죄가 분리되기 시작한다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어렵기도 하고 이 문서의 수준을 넘어선다고 생각되어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니체가 그리스도교적 죄의식을 비판하는 부분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종교는 어떻게 시작될까? 아브라함 계열 종교 같은, 문명사회 이후의 종교 이전, 고대의 종교들은 조상숭배에서 기인했다고 니체는 설명한다.


고대의 종족 공동체는 자신들이 조상의 희생과 업적 덕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상에게 공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그러한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상과 그 힘에 대한 두려움과 조상에 대한 부채의식은 대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조상은 구전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신 자체가 되는 것이다. 니체는 이것이 신이라는 관념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살짝 니체를 벗어나자면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종교의 탄생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은 이러하다. 아버지가 부족의 모든 여자를 독점하자 형제들은 자신들도 여자를 가지고 싶어 아버지를 죽이기로 한다. 막상 아버지를 죽이고 나니 두려움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고, 끝내 신격화한다.


이 이야기와 니체가 얘기하는 '신의 탄생'은 맥락이 같다. 프로이트는 '조상에 대한 부채감'이 신을 탄생시켰다고 얘기한다. 니체와 프로이트 사이의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프로이트에게 부채감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다시 니체로 돌아오면, 이러한 부채 의식, 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이 의식은 혈연 공동체가 사라지고 문명사회가 도래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부채의식은 수천수만 년 동안 계속 성장하다가 그리스도교에서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니체는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인간이 신에 대한 무한한 부채의식을 가진, 즉 자신이 신에게 범한 죄(혹은 빚)를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어 원죄를 얻었고, 이를 영원히 상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빚의 도덕화와 함께, 이제 빚을 완전히 변제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빚을 상환할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죄도 보상할 수 없다는 생각, 즉 속죄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고통받는 인간 앞에, 즉 그리스도교라는 천재적인 수완 앞에 갑자기 맞닥뜨리게 된다.

신 스스로가 인간의 죄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 신 스스로가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대가로 지불한다! 신이란 인간이 상환할 수 없게 된 것을 인간을 대신해서 상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채권자가 자신의 채무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도 사랑 때문에! 자신의 채무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은 이것이 믿기는가?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이 개념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대속(代贖)의 개념이다. 신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 채권자가 채무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그 채무를 변제함으로써, 인간은 이제 영원히 부채를 상환할 수 없게 되었다. 상환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양심의 가책이고, 죄의식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인이 신에 대해서 갖는 이런 죄의식이야 말로 인류 역사에서 창궐했던 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말한다.




자, <도덕의 계보> 제 2논문이 끝났다. 어땠든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가책이 실은 비문명적인 야만에서 기원했다는 얘기와 그리스도교가 조상에 대한 감사를 원죄의 개념으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심었다는 얘기는 재미있었는가? 재미있었지만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당신을 위해 내가 약간의 해설을 덧붙이겠다. 실은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한 얘기다.


니체의 유명한 아포리즘, '신은 죽었다'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니체의 말대로 신은 죽었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현대에도 위세를 떨치는 세계적 종교지만, 삶의 중심에 신앙이 있는 현대인은 드물다. 현대인의 삶은 중세나 근대보다 훨씬 세속적이며, 복잡하고, 다양하다. 만약 오늘 니체가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이 죽은 자리에 우리는 새로운 신을 만들어 세웠다.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는 그리스도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한 종교다. 그리스도교는 배척할 수많은 이교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다. 유일한 이교도였던 공산주의는 스스로 붕괴했다. 이제 현대인 중 자본을 떠나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이 부활했다면, 그렇다면 신에 대한 부채의식도 부활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돈을 버는가? 당신의 연수입에 만족하는가? 당신의 자산은 얼마인가? 당신은 만족할한큼 부자인가? 당신은 노후 준비가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을 들었을 때 당신이 느끼는 그 기분, 아직 충분한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는 불안감, 남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조급함 같은 것들은 실은 부채의식이다. 영어 공부를 더 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고, 프레젠테이션에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나 보다 먼저 진급한 김대리를 보며 패배감을 느끼는, 이러한 행위들은 실은 부채의식 때문에 당신이 스스로를 가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신은 없다. 그 부채의식은 가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들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다만 이 이야기는 또 다른 한 바닥 글이 필요한 글이라, 이미 써둔 글을 링크하겠다.




이제 <도덕의 계보> 마지막 논문인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남았다. 이 논문 또한 너무나 재미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논문이라 기대해도 좋다.


마지막 부분에 언급했던, 신이 죽은 자리에서 부활한 새로운 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글을 아래에 남기며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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