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을 다 읽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브라이언 그린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초끈 이론을 설명하는 <엘레건트 유니버스>와 다중우주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멀티유니버스>에서 환원주의적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도 내려오지 않았던 그린은 이 책에서는 슬쩍 인문학자적 면모를 보인다. 에르빈 슈뢰딩거도 만년에 <생명이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썼으니, 삶의 후반에 들어서면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묻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나의 존재 의미를 묻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자”라고 하지 않았나.
이 책은 빅뱅의 순간으로부터 출발하여 우주의 죽음까지, 과거에 시간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생각이라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축복받은 일인지 설명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지만, 내가 짧게 잘 요약해 보겠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우리는 극초기의 우주를 살고 있다. 우리의 우주는 탄생한 지 138억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의 수명을 100살이라고 가정하고 손바닥 위에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놓아 보자. 그리고 고개를 들어 대로변 6층짜리 빌딩을 올려다보자.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다면 그 빌딩의 가격은 대략 수백억 원 정도가 될 것이다. 강남대로에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빌딩들이 즐비한 것을 생각해 보면, 138억 원은 상상하지 못할 수준의 돈은 아니다. 그리고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힌트다. 우주는 늘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 있다.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138억 년은 차라리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럼 우주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별의 생성이 멈추는 순간이 우주의 죽음이라고 말하는 물리학자도 있고,*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의 순간까지를 우주의 수명으로 보는 물리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린은 양성자가 붕괴하고 마지막 블랙홀이 마지막 복사를 방출하고 증발해 사라지는 시점을 시간의 끝(The end of time)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글은 일단 그린의 설명을 따라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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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실은 이 관점을 좋아한다. 이 관점으로 우주의 수명을 24시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0시 0분 6초를 살고 있다.
**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가 완전한 열평형 상태가 되는 순간으로,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를 바른틀 앙상블이라고 한다
위에서도 썼지만, 우주적 스케일은 대개 우리의 상상력 바깥에 있다. 그래서 그린은 우주 스케일을 설명하기 위해 재미있는 사고 도구를 도입한다. 이 설명 방식이 멋져서 나도 빌리기로 하겠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재미있는 장치를 해보자. 빌딩 1층 바닥이 빅뱅의 순간이다. 그리고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10년이 걸린다. 그리고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10배인 100년이 걸린다. 4층으로 올라가 위해서는 다시 10배인 1천 년이 걸린다. 상상할 수 있는가?
빅뱅으로부터 지금까지는 138억 년이 흘렀으므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10층에 서 있는 상태가 된다. 우리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면 우주에는 어떠한 일들이 생길까?
여름 해변에서 조약돌을 주으면 어떠한가? 따뜻할 것이다. 여름 해변의 조약돌이 따뜻한 것은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복사 에너지 때문이다. 태양빛이 조약돌의 표면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진동수를 올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따뜻함을 느낀다. 따뜻하다는 것은 실은 우리 손 표면의 진동수보다 높은 진동수를 가진 입자로 구성된 물질의 표면과 닿았다는 전기 신호다.
이 따뜻함은 어디로부터 왔나? 물론 태양으로부터 온 것이다. 태양은 중심부의 수소 4개를 융합해 헬륨 1개를 만든다. 수소 원자 4개보다 헬륨 1개의 질량이 조금 가벼운데, 그래서 핵융합이 진행되면 태양은 질량을 잃는다. 이 잃어버린 질량이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가 바로 햇볕을 통해 지구에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방정식이 아인슈타인의 E=mc², 질량-에너지 동등성 방정식이다)
이 과정은 태양이 생성된 9층 어딘가에서 시작됐다. 태양은 50억 년 전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50억 년이 지난 후 10층 어딘가에서 태양은 내부의 수소를 모두 소모한다. 연료를 모두 소진한 태양은 이번엔 헬륨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헬륨을 태우려면 1억 도의 온도가 필요하다. 수소는 1500만 도에서 핵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주원료를 헬륨으로 바꾸기 위해서 태양은 엄청난 에너지를 바깥쪽으로 방출한다. 태양 전체가 팽창하는 것이다. G형 주계열성인 태양은 순식간에 적색거성으로 변신한다.
태양이 급격히 팽창하는 순간, 그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브라이언 그린은 거대한 태양이 지구를 향해 추락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장관일 것이다. 거대한 태양이 지구를 향해 떨어진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기가 막힌 장관을 관찰할 생명체는 그때는 이미 지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표면 온도는 수천 도에 이를 것이기에 바닷물은 이미 모두 증발했고, 대기도 우주로 날아가버린 후일 테니까 말이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멸종한 다음의 이야기다.
이렇게 10층 어딘가에서 탄생한 인류는 11층에 오르지 못하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었던 천체와 함께 여기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태양은 어떻게 될까? 태양이 헬륨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시기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쓰는 시기보다 짧다. 헬륨을 모두 태우고 내부를 산소와 탄소로 채운 태양은 별로서의 삶을 그 시점에서 마감한다. 탄소와 산소를 핵융합하기 위해서는 이번엔 6억 도의 온도가 필요한데, 태양의 질량은 아무리 맹렬히 자신을 압축해도 그 온도를 낼 정도로는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은 열 에너지가 남아 있어 이후로도 수십억 년 정도는 빛을 발하겠지만(이를 백색 왜성이라고 한다) 더 이상 핵융합을 해낼 수 없는 태양은 타고 남은 캠프파이어의 잔불처럼 서서히 잦아들다 어둡고 차가운 죽은 별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태양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층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9층에서 탄생한 태양계는 10층에서 그 모든 여정을 마치게 된다.
10층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는) 인류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태양의 죽음이었다. 11층으로 올라가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볼 수 있게 될까? 11층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무척 흥미롭다.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과 내가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 있을 때, 실은 우리는 멀어지고 있다. 그 멀어지는 속도가 느려서 느껴지지 않을 뿐, 나와 당신은 분명히 멀어지고 있다. 당신 눈앞의 커피잔은 팽창하고 있다. 우리와 커피잔은 우주 스케일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미미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변화를 우리의 감각으로 체험할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우주 스케일에서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먼저 바람 빠진 풍선에 점을 하나 찍고, 그 바로 옆에 하나를 찍는다. 세 번째 점은 첫 번째 점의 반대편에 찍는다. 이제 풍선을 불어보자. 어떻게 되는가?
첫 번째 점과 바로 옆에 찍힌 점이 멀어지는 속도와 반대편에 찍은 점이 멀어지는 속도는 다를 것이다. 공간이 팽창한다면, 공간 속 두 물체가 멀어지는 속도는 거리와 관계가 있다. 멀리에 있는 것이 더 빠르게 멀어지게 된다.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효과로 돌아올까? 공간의 팽창은 심지어 태양계 스케일에서도 우리에게 큰 문제를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은하 단위의 스케일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11층의 어디에선가,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 등 30개의 은하를 포함한 국부 은하단(우리 지구와 가까이에 있는 은하들의 집합)을 제외한 모든 은하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멀어지는 속도가 광속을 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멀어지는 속도가 광속보다 빨라지면 발사한 빛이 지구에 닿을 수가 없게 된다.
빛보다 빠르게 멀어질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주에는 빛보다 빠른 물체가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 물체는 광속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간은 다르다. 은하들이 멀어지는 것은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이지, 천체들이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때문이 아니다. 풍선 위에 찍힌 점은 스스로 이동하지 않는다. 점이 멀어지는 것은 풍선의 표면이 팽창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류가 소멸한 후에, 11층에 어떤 지적 생명체가 문명을 건설하여 천문학을 연구한다면, 그들은 국부 은하단에 소속된 30개의 은하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우주가 너무나 넓고 텅 비어 있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더 재미있는 얘기가 많지만 이미 엄청나게 길어져버려서 조금 속도를 내겠다. 12층과 13층을 건너뛰고 이제 14층으로 가보자.
최초의 별은 8층에서 탄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좀 더 정확히는 빅뱅 후 1억 년 경이다. 별이 탄생하는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충분한 양의 수소만 있으면 된다. 많은 양의 수소가 중력으로 서로 이끌리다가 중심부의 온도가 임계값을 넘으면 핵융합 반응이 시작된다.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14층에 오르면 별은 더 이상 탄생하지 않는다. 새로운 별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별은 자신의 동력원(수소, 헬륨, 탄소, 산소 등의)을 모두 소모하고 더 이상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간다.
한 때 빛나는 별들로 가득했던 우주는 황량한 디스토피아가 된다. 찬란한 별들이 빛나던 하늘에는 이제 타고 남은 재 밖에 없다. 14층에서 태어난 지적 생명체는 우주에서 단 한 개의 별로 발견해내지 못할 것이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졌지만 낮은 단 하나뿐”이라 쓴 버딜론의 시가 그 시대에까지 전해진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버딜론의 천 개의 눈이 무엇의 비유인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자이로드롭을 타 보았는가? 개인적으로는 자이로드롭의 정상에서 ‘철컥’하고 죔쇠가 풀렸던 순간, 영원 같았던 1초를 여전히 기억한다. 나는 그날 혹시 자살을 하게 된다면 투신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이로드롭을 탈 때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주 정거장 속 우주인들이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우주 정거장은 아주 천천히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인공위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은 어떨까? 뉴턴 역학으로 지구의 궤도를 우리는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뉴턴 역학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행성들은 언젠가 궤도 중심의 별로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3층이다. 만약 지구가 그때까지 천체로 남아 있다면, 지구의 마지막 운명은 태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23층에서 지구는 태양과 충돌하며 물리적으로 소멸한다.
그렇다면 태양은 어떠할까? 태양 역시 무언가의 중심을 향해 공전하고 있다. 우리 은하 중심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는데, 태양 역시 언젠가 블랙홀을 향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24층이다. 태양뿐만이 아니다. 24층부터 30층까지, 우주의 모든 별들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30층 이후의 우주엔 블랙홀만이 남게 된다.
14층 이후 이미 우주는 모닥불 없는 설원이었기에 생명이 탄생하거나 문명이 유지되는 것은 이미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30층 이후엔 이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우주는 언젠가 자신을 관찰할 관찰자를 잉태해야 한다’는 인류원리에 입각하면, 관찰자를 잉태할 수 없어진 우주는 이미 존재론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블랙홀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아무것도, 그러니까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검은 구멍.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블랙홀은 실은 검지 않다. 스티븐 호킹에 의하면 블랙홀은 온도를 갖고 있고, 놀랍게도 스스로 빛을 발한다. 입자를 방출하는 것이다. 이를 호킹 복사라고 한다.
블랙홀은 계속 호킹 복사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한다. 동시에 점점 더 압착되어 끊임없이 작아진다. (이것을 과학자들은 '블랙홀이 증발한다'라고 표현한다)
모든 에너지를 다 방출하여 질량이 거의 0이 된 블랙홀은 어떻게 될까? 사라져 버릴까? 장렬하게 폭발할까? 사실 현대 과학으로는 알 수 없다. 호킹 복사는 너무나 적은 양이기 때문에 블랙홀이 완벽하게 증발해 버리는 것은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68층에서 완전히 증발한다.
한편, 양자 고리 중력 이론을 연구하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최근 블랙홀의 죽음에 대한 놀라운 가설을 발표했다. 아주 간단히 로벨리의 주장을 요약하면, 블랙홀은 증발하는 순간 별 전체가 양자적 도약을 통해 시간이 역전된 우주로 점프해 사라진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시간에 존재하게 되는 블랙홀을 로벨리는 '화이트홀'이라고 부른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이 글 마지막에 링크해 두겠다.
자 우주의 긴 여정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우주의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했을 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02층에서 마지막 블랙홀이 마지막 복사를 뱉어내고 소멸한다. 이제 우주에 천체는 남지 않았다. 가끔 전자와 양전자가 궤적을 서로 가까워지다가 소멸되고, 이때 방출된 섬광이 잠시 작은 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 우주는 암흑 천지가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상황만 보면 이 상황은 빅뱅 직후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빅뱅이 일어난 직후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입자뿐이다. 입자들이 모여 수소 원자가 탄생하는 것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층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빅뱅 직후엔 입자들은 원자를 구성하지 못하고 마구 뒤섞인 채 공간을 날아다녔다.
다른 점은 우주 초기에는 입자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별이나 행성 같은 천체가 형성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우주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입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공간이 너무 많이 팽창해 버린 후라, 질량이 형성될 가능성이 사라진다.
이렇게 우주의 만물은, 나와 당신과 대한민국과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를 구성하는 모든 만물은 먼지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이 시기, 입자들이 더 이상 물질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에 덮인 우주에 망각만 남은 시기를 물리학자들은 시간의 끝(end of time)이라고 부른다.
긴 글이었다. 분량상 빅뱅에서부터 출발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와 인류와 지구와 태양계가 모두 소멸한 다음에도 묵묵히 우주가 겪을,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비록 10층에서 태어나 10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고, 9층에서 태어난 태양계 역시 10층에서 소멸할 것이지만, 우주는 그 후로도 이렇게 장대한 역사를 경험할 것이다.
이미 깨달았겠지만, 의식을 가진 존재인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우주는 너무나 짧다. 이후의 우주는 수학적으로 예측한 것이지, 우리가 경험하고 기억할 우주는 아니기 때문이다. 10층의 어느 순간부터 102층까지, 우주는 우리 없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지고 태어나, 이 우주를 인식하고 우주의 운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의 존재 순간은 이렇게나 짧다. 브라이언 그린이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찰나의 춤을 추고 있는 기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만약 우주가 생명으로 가득하고, 의식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흔한 현상이라면,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의식, 우리가 가진 생각은 공산품처럼 가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유는 우주 역사상 매우 희귀하고,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놀라운 사건이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가 의식을 갖고 내가 쓴 글이 당신에게 읽히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다. 우리는 매 순간 이렇게 기적으로 존재한다.
당신이 만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평범한 순간은 우주적 관점에서는 로또에 당첨될 확률 따위보다 훨씬 희박한 확률 위에 존재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숫자와,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숫자를 상상 속에서 비교해 보라. 의식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영겁의 시간을 건너 우주적 죽음을 맞이할 입자들이, 당신을 구성하는 입자들보다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 보라.
이렇게 당신이 누리는 모든 우주적 기적의 순간을, 부디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기를.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를. 당신의 기적을 어떤 이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보내지 않기를. 그렇게 온전히 당신이라는 기적을 누리고 먼지가 되어 떠나길 기원한다.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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