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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17. 2023

성공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 질문이 싫어서 나는 포르쉐를 샀다

세비야의 카페거리. 세비야는 마나님과 함께할 12개 도시 1개월씩 살기 프로젝트의 후보 중 하나다. ⓒUnsplash의Iván Molina Mas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대개 상대주의자가 된다. 여러 경험을 쌓으면 세상은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 보던 것과 다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요 몇 년 내 입버릇은 "그럴 수 있다"이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누군가에엔 '굳이' 일 수 있고, 나에겐 그저 피곤할 뿐인 정치 뉴스 꼭지는 누군가에겐 술자리 전부를 토론에 집어 넣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일 수 있으며, 주말 마다 아이들 술상을 차리는 나와 마나님의 일상은 누군가에겐 대단한 비일상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의 사정과 취향과 배경과 처지가 있다. 


"그럴 수 있다"가 입버릇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끈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성공'과 '부자'를 태연하게 나란히 놓는 글을 읽거나, 말을 들었을 때 이다. (오늘도 점심 먹으며 켠 페북 타임라인에서 그런 글을 보고 참지 못하고 이런 글을 싸지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하지만, 만약 성공이라는게 있다면 그 성공의 기준은 본인이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누군가에겐 '굳이' 일 수 있는데 왜 나의 성공 조건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가? 


남의 성공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이 이미 폭력적인 것이지만, 더 기가막힌 것은 본인의 성공 여부를 남이 결정하도록 두는 태도다. 아니, 심지어 그냥 결정하도록 두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 동조를 한다. 괜찮은가? 나는 늘 누군가에게 평가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싫다. 나는 내 성공을 누군가가 결정하게 두지 않겠다. 나의 성공 여부는 죽기 직전에 내가 결정한다. 나의 가장 큰 인생 목표는 마나님과 세계 12개 도시에서 각 1개월씩 살아보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느냐는 질문에 죽음을 앞두고 긍정 대답을 할 수 있으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그 외 부수적인 목표로는 건강하기, 내 어린 시절의 질문들에 답하기,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기, 좋은 아빠로서 기억되기 등등이 있으나, 여튼 내 성공 여부는 내가 죽기 전에 부자가 될 것이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문득 예전에 "돈을 얼마나 벌었기에 포르쉐를 샀느냐"는 지인의 질문에 "그 질문에 대답하기 싫어서 샀다"고 답한 기억이 떠오른다. 


다 쓰고 나니 흥분이 조금 가라 앉았고, 나는 다시 상대주의자로 돌아왔다. 그래. 다른 사람들의 성공 기준은 나의 기준과 매우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렇다. 괜찮다. 나는 상대주의자니까 :D


글 쓰느라 점심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이만 쓰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걸으러 나간다. 퇴고를 안 할 생각이라 글이 좀 거칠다. 



(산책 다녀 와서 추가함)


나는 성공보다 '성취'라는 단어를 훨씬 더 좋아한다. 모든 사람은 살아가며 뭔가를 이룬다. 그게 회사에서든, 사회에서든, 개인적인 것이든. 창업처럼 거창한 일일 수도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누군가를 돕는 일일 수도 있다. 인생에 성취가 없는 경우는 없다. 작든 크든 모두가 자신의 인생 타임라인 안에서 성취를 경험한다. 


성공에게는 '실패'라는 반댓말이 있지만, 성취엔 그런 반대말이 없다. 성취에는 실패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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