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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Jul 09. 2024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영혼 같은 것은 없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라마찬드란

사진으로는 느껴지지 않지만 제법 두꺼운 벽돌책이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다. 그는 뇌가 손상된 다양한 종류의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관찰하고 실험함으로서 뇌의 구조와 동작 원리를 탐구한다. 역자는 라마찬드란 박사를 셜록 홈즈에 비유하는데, 그럴듯 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경우, 두 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각각의 눈은 반대 뇌에 연결되어 있는데, 특수 안경을 이용하면 한쪽의 뇌에게만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좌뇌는 무신론자이지만, 우뇌는 크리스찬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뇌량 절단 환자에게 우뇌에 '바나나'라는 글자를, 좌뇌에 '빨간색'이라는 글자를 입력한 후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해 보면, 왼손과 입력된 우뇌는 자연스럽게 바나나를 그린다. 대답을 총괄하는 좌뇌에게 '왜 바나나를 그렸냐'고 물었을 때 기대되는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좌뇌는 '바나나'라는 글자가 입력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환자는 '왼손으로 그리기 편한 것이 바나나라서 그렸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 두 사례는, 우리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나'의 존재, 그러니까 생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데카르트의 의식이 착각이나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의식철학 관점에서는 환원적 물리주의자로 분류될 것이다. (그가 심리철학자 대니얼 데닛을 자주 인용하는 것도 관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를 떠나 존재하는 영혼 같은 것은 없으며, '나' 혹은 '의식'은 뇌의 물리적 전기적 현상이 빚는 착각이나 환상이라는 것이 물리주의의 결론이다. 다소 회의적으로 보이는 이 결론에 도달한 다음, 이 인도인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뇌과학의 혁명을 통해 마음이나 육체와 구분되는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가 특권적 위치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고상한 존재라면, 우리는 우리의 소멸을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단지 구경꾼이 아니라 시바가 추는 거대한 우주적 춤의 일부라면, 우리의 불가피한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자연과의 행복한 재결합이 된다."


라마찬드란 박사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시바가 추는 거대한 우주적 춤의 일부인 것이다. 


한 편, 이 책은 내가 찾아 해메던 대단히 중요한 과학적 결론의 단서를 주었다. 내가 심리철학과 뇌과학 근처를 계속 읽고 있었던 이유는, '현대 과학은 무의식을 어떻게 말할까?'라는 질문을 예전부터 계속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대해,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신경과학 공동체 전체는 프로이트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의 말은 사실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시험해볼 수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연구를 진행하면 할 수록 그가 천재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어진다.


프로이트가 말한 심리적 방어기제는 뇌과학의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주요 개념, 부정, 억압, 반동형성, 합리화, 유머, 투사 등 모든 개념들을 뇌과학의 실험 결과들이 증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즉 뇌과학은 프로이트를 부정하는 곳에서 출발했지만, 그 스스로의 실험의 결과로 프로이트를 증명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 정신분석학, 뇌과학은 이제 서로 다르거나 대립하는 학문이 아니다. 같은 것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너무나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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