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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Jul 10. 2024

'나'라는 허구

<의식이라는 꿈>, 대니얼 데닛

표지는 정말 예쁘다


<의식이라는 꿈> 완독. 


심리철학은 다소 마이너한 철학의 세부 분과다.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심리철학은 '인간에게 정말로 마음이 있는가?'하고 묻는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마음이 있냐니. 오늘 아침에 괴로와하며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한 '나'의 마음이 있냐고 묻는 건가? 이게 질문이 될 수 있나? 싶다   


심리철학자들은 '인간에게 마음이 있다'는 대답을 하는 철학자들과 '없다'라고 대답하는 철학자들로 나뉜다. 그리고 놀랍게도 뇌과학이 발달한 현대의 철학자들은 '마음이 없다'의 손을 든다. 


인간을 마음과 육체, 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실체이원론이라 한다. 실체이원론은 근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됐고, 헤겔에 의해 집대성됐다. 실체이원론을 비판하는 실체일원론자들은, 마음은 없고, 우리가 가진 건 몸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과 논증을 설명하기엔 페이지가 모자라니 궁금한 분들은 아래에 있는 심리철학 입문서를 찾아보길 권한다) 


실체일원론, 즉 우리가 가진 건 물리적인 우리 육체 뿐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철학을 물리주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 물리주의는 다시 둘로 나뉘는데, 마음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입장이 그 것이다. (철학 용어를 써서 어렵게 얘기하면 심적속성을 물리적 속성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이 책, <의식이라는 꿈>의 저자 대니얼 데닛은 환원적 물리주의자의 대표 주자다.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다. 의식을 '꿈 같은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데닛은 마음이나 의식은 없고, 우리의 뇌는 온갖 정보가 서로 목소리를 내며 경쟁하는 아수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쟁의 승리자가 메가폰을 들고 뇌안 곳곳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데, 이 연속된 메가폰 소리를 우리는 '의식'이라 착각한다는 것이다. 데닛은 이 이론을 '환상의 메아리 이론'이라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지금 읽은 책의 완독 후기를 페북에 정리하기 위해 타이핑을 하고 있다. 내 의식은 여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은 목 뒤쪽이 조금 가렵다. 이 정보는 외친다. "목 뒤가 가려워요!" 그런데 이 정보는 페북에 글을 정리하고 있는 의식의 메아리를 이기기 어렵다. 나는 꽤나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 뒤쪽이 가렵지만 가렵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딸이 들어왔다고 치자. "아빠, 큰일 났어요! 불이 났어요!" 집에 불이 났다는 정보는 당장 모든 후보들을 제치고 선출 권력이 된다. 큰일났다! 라고 생각하는 건, 데닛에 의하면, 내가 아니라 그 정보가 메아리가 된 결과이다.


그럴 듯 한가?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정보를 종합하여 관조하는 '나'는 없고, 그 정보 자체가 의식이라는 데닛의 주장은, 내게서 도망쳐 선 타인의 대지에도 내 자리는 없다고 말하는 라캉 만큼이나 허무하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그러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이 책은 데닛이 친절하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 아니다. 여러 기고나 논문등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반박한 다른 철학자들에 대한 재반박을 담은 책이다. 즉 심리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데닛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전제로 쓰여져 있다. 데닛을 읽기 위해서는 아마도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데닛 스스로 이 책, <의식이라는 꿈>이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의 주석 같은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번역이 매우 실망스럽다. 거의 직역체에 가깝게 쓰여져 있는데, 그래서 별로 어렵지 않은 내용을 읽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의식철학은 흥미로웠지만 여기까지 읽고 잠시 다른 책들을 읽기로 한다.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차머스의 책이 번역되기를 희망한다. 데이비드 차머스는 의식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비환원적 물리주의자다. (데닛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의 테드 강연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https://www.ted.com/talks/david_chalmers_how_do_you_explain_consciousness?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https://brunch.co.kr/@iyooha/74


https://brunch.co.kr/@iyooha/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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