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김치찌개집이 두 곳 있다.
마나님: 요즘 유튜브를 보면 10편짜리 드라마 30분만에 줄여서 스토리 알려주는 영상들 많잖아.
나: 응.
마나님: 그런 영상들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보면 재밌나? 그런 영상들 숫자가 점점 느는 걸 보면 컨텐츠를 이런식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나: 글쎄...?
마나님: 작가로서 불만 없어? <하얀 로냐프강 10분 다이제스트> 같은 영상이 있다면 말이야.
나: 모던한 생각이네.
마나님: 모던?
나: 누군가 정한, 혹은 사회가 합의한 작품의 올바른 감상 방법이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생각이니까 모던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은 계몽적 태도고, 그 평가를 적극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평론적 태도고.
마나님: 간만에 알아 듣기 힘든 소리를 하네?
나: 플라톤의 이데아, 알지? 완전한 이상향과 쇠락한 현실. 마찬가지로 당신의 태도는 감상의 이데아를 전제하고 있다는 얘기야.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는 것이 맞다. 도중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올바른 방법이다. 그 생각이 맞다, 그 생각은 틀렸다, 이런 게 아니라 어쨌든 그 태도는 모던한 태도라는 거지.
마나님: 그럼 요약해서 보는 방법은?
나: 작품을 감상하는 표준적인 방법은 없고, 그 방법은 각자 향유자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태도가 있다면 그 태도는 포스트모던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게 요약 감상일 수도 있고, 2배속 재생일 수도 있고, 그것도 귀찮아서 '하얀 로냐프강 결말'이라고 네이버에 쳐 보는 것일 수도 있겠고.
마나님: 감상의 이데아는 없다?
나: 포스트모던은 이데아를 부정하면서 출발해. 이데아는 그저 담백한 이상향에 머무를 뿐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위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생각이야. 이데아에 가까운 것이 선한 것이고, 우수한 것이고, 이데아에서 먼 것이 악한 것이고, 열등한 것이고. 이렇게. 포스트모던은 이 위계를 거부해. 이런 관점에서는 정주행과 요약 감상이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갖는 감상 방법이 되지.
마나님: 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는, 예를 들어 열등한 김치찌개는 없어. 각자 좀 더 짜고, 싱겁고, 진하고, 순하고, 시큼하고, 밍밍하고, 고기가 많고, 김치가 많은 김치찌개가 있는 거지.
마나님: 그건 실망인데. 주주형제 김치찌개가 지금 우리가 먹는 OO김치 찌개 보다 우수한 건 사실 같은데.
나: (웃는다)
마나님: 나는 역시 이데아주의자로 남겠어. 더 맛있는 김치찌개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따위. 그러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제대로 된 방법은 있는 걸로.
나: (웃는다)
(잔을 부딪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