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가졌는지.
드디어 브런치에 입문한다. 20대에 방송국에서 구성작가로 잠시 일했었다. 이후, 늘 다시 글을 써 보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물리적 시간은 있었지만, 마음의 시간이 없었다고나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잡다한 일상을 멈추자, 그 어렵던 일이 너무나 쉽게 시작되었다. 미국에선 CORVID-19이라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내 일상의 많은 것들이 멈추었다. 아이를 학교에 드롭하고 들러 천천히 물건을 고르던 홀푸즈 마켓도, 친구와 만나 수다 떨던 피츠 커피도 더 이상 가지 않는다. 홀푸즈 마켓은 아침부터 이어진 긴 줄로 장보기가 어렵게 됐고, 피츠 커피뿐 아니라, 모든 커피숍에서는 투고 커피만 가능하다. 학교도 휴교, 병원, 약국, 그로서리 같은 이센셜을 제외한 모든 비즈니스가 멈췄다. 늘 막히던 880 프리웨이도 한산하다. 이 상황은 3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어 3월 16일부터 3주간 SIP (Shelter in Place) 오더가 떨어지며 시작되었다. 나의 일상의 시계는 멈췄지만, 나는 이 상황을 브런치에 남겨 보려 한다.
1월 말이었다.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한국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에 타겟 슈퍼에 손 세정제를 사러 간 게. 매대는 텅 비어 있었다. 단 한 개의 손세정제도 살 수 없었다. 늘 한가로이 쇼핑을 하던
트레이더 조로 향했다. 거기서도 손세정제는 솔드 아웃. 그때부터였다. 오프라인에선 마스크, 손세정제를 아예 살 수 없었고,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사람들이 휴지를 사재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같은 삽화를 돌려보며 자학 개그를 할 여유는 있었다.
그리고 3월이 되었을 때 물, 쌀, 휴지 같은 주요 생필품에 대한 본격적인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늘 다양한 종류의 빵으로 가득 차 있던 트레이더 조의 매대가 텅 비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바빠졌다. 그 전까진 필요한 것만 사겠다고, 쿨한 코리안의 모습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코스트코로 한국 마켓으로 몇 곳을 돌아도 쌀을 살 수 없었을 때...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여유 분의 쌀을 미리 사놓은 친구에게 쌀을 받아 들고 집에 오며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이런 모습일까...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자주 통화하기 시작했다. 다들 마스크도 제대로 수급 못한다고 정부를 비판했고, 내가 더 어처구니없는 미국 상황을 아무리 얘기해도 다들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여기선 마스크를 아예 살 수 없다니깐... 한국에선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는 받을 수 있다. 한국 질본에서는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며, 의심 환자까지 찾아내어 검사를 한다. 미국은? 믿기지 않겠지만,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검사 키트도 준비돼 있지 않던 나라다. 미국 의료 체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동네 전경을 사진에 담았다. 구름 낀 하늘과 나무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 그래... 이게 캘리포니아 하늘빛이지. 저 푸르름이 구름을 뚫고 나오기를. 캘리의 하늘을 다시 제대로 누릴 그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