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만춘 Oct 22. 2023

질문은 고고학자처럼

"도굴꾼은 여기저기 파헤쳐보고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그대로 방치하고 떠난다. 반면에 고고학자는 유적을 소중히 여기고 정성스럽게 하나씩 찾아나간다. 질문은 도굴꾼이 아니라 고고학자처럼 해야 한다." 

- 윤태성, <답을 찾는 생각법>


초면인데도 개인적인 질문을 마구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인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함인지 헷갈린다. 질문에 답하다 보면 대화 끝에 남는 것은 피로감과 공허함. 나는 도굴꾼이 다녀간 후 마구 헤쳐진 상태로 남겨진 고분이 된다.


질문은 상대에 맞게 해야 한다. 사람들과 쉽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이야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후자인데, 어떤 이는 '그런 질문이 불편하다'라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거나 너무 예민하다고 말한다. 마치 내가 자신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숨겨야 하는 사정이 있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나는 다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왜 당신한테 알려야 하나요?'라고 항변하고 싶다. 


예전에 지인이 미용실 디자이너를 추천해 줘서 머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무슨 일을 하나요? 근무지는 어디인가요?... 너무 세세한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못해 답을 해 주다 질문을 피하려고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그분은 친밀감을 형성해서 단골을 한 명 더 만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성향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질문은 배려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단순히 '궁금하니까 물어본다'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질문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상대의 신체적인 약점이나 흉터에 대한 궁금증은 서랍 속에나 집어넣어 버리길.


좋은 질문은 상대의 대답을 듣고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지며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의 대답을 잘 들어야 한다. 수업하다 보면 학생들의 질문이 중복될 때가 있다. 방금 어떤 학생이 질문해서 내가 대답을 했는데 다른 학생이 똑같은 질문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같은 질문을 한 학생은 자신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듣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화를 다시 출발선으로 돌려놓는 셈이다. 


질문의 태도나 내용에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도굴꾼처럼 파헤치는 것이 목적인지, 고고학자처럼 탐색하고 발견하는 것이 목적인지 생각해야 한다. 도굴꾼은 고분에서 자기가 필요한 유물만 훔쳐 도망가지만, 고고학자는 유물 발굴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유적지를 소중히 관리한다. 질문은 도굴꾼이 아니라 고고학자처럼 해야 한다.

이전 04화 질문은 관심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