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어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세요?”
“어제 잠은 잘 잤나요?”
“오늘 점심은 뭘 먹었나요?”
인적 사항, 취향뿐만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다 알고 싶다.
대체로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질문의 양이 줄어든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더 이상 상대에게 궁금한 것이 없을 만큼 관심이 줄어든 탓도 있다.
“넌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라는 질문에
“딱히.”
라고 답한다면, 그 커플은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유명 연예인의 라이브 방송에 많은 팬이 모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팬들은 연예인의 생생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더해 질문을 통해 자신의 관심을 표현한다. 심지어 그가 사용하는 섬유유연제까지 알고 싶어 하고, 같은 제품을 쓰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반면, 라이브 방송을 켜도 팬들이 많이 모이지 않거나 채팅창에 질문이 별로 없다면 안타깝게도 팬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의 줄임말).
전혀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어떤 사람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안물안궁’이라는 유행어는 상대에게 무례한 표현임에도, 그 지겨운 시간을 차단하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한다. 문제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방패를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키지 않는 고개 끄덕임이나 입가에 미소까지 장착한 채……. 말하는 사람 혼자 신이 나서 과거 회상으로 전개가 이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그 타임머신을 멈추고 싶을 만큼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나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이므로 한편 고마운 일이다(물론, 상대에 따라 그 관심이 도리어 무척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수업 시간 중이나 후에 질문을 하는 학생들도 내 수업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것으로 보여 고맙고 기특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책을 읽은 후 책 소개하는 발표를 하는데 발표가 끝난 후 청중의 질문을 받고 응답하는 시간이 가장 생동감 넘친다. 발표자는 그 시간이 자신과 자신의 발표에 대한 친구들의 관심을 흠뻑 받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관종’이라는 표현이 있다.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서 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너무 나서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관종이 아닐까? 평생 소외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죽기 전 자신의 방 벽에 ‘아무개 여기 살았음.’이라고 적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모든 사람이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니 따뜻한 질문은 우리를 살게 한다.
“몸은 좀 어때?”
“네 생각은 어때?”
누군가 내 건강과 생각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내가 그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