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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Oct 22. 2023

질문은 힘이 세다.

“그건 왜 그렇게 된 겁니까?”

“그렇게 하는 근거가 뭡니까?”

어떤 질문은 이제까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니면 얼렁뚱땅 감추고 넘어가려 했던 것을 파헤치게 한다. 속이고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의 계획을 무산시킨다. 질문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란 어렵다. 


총칼을 들지 않아도 결정적인 질문 하나로 상대를 제압하고 멈춰 세울 수 있다. 그 사람의 속임수나 사기 행각을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할 수 있다. 대중을 움직여 함께 변화를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낙타는 질문하지 않는다. 낙타는 웃지도 않고, 울부짖지도 않는다. 이것이 자유를 포기한 낙타의 모습이다. 주인은 낙타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메마른 사막을 끝도 없이 걷게 한다. 의문을 품지 않고, 생각과 의지를 갖지 않는 낙타는 아무리 주인보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크더라도 무섭지 않다. 평생 주인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주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낙타의 삶을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낙타의 등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벼워질 뿐이다. 


우리가 낙타 같은 삶을 살 수야 없지 않은가. ‘원래 그렇다’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말에도,

“그게 왜요?”

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원래’나 ‘당연’이라는 말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할 때, 낙타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는 대신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 질문이야말로 내 등에 짐을 지우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로부터 나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 


군중 속에서 혼자 

“왜요?”

라고 묻거나,

“아니요!”

라고 말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른 구성원과 조화를 이루어 살기를 원하고, 남들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소외’나 ‘격리’라는 두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편안하고 낯선 것은 불편하다. 나 역시 군중 속의 한 명이 되어 자연스레 섞여 있을 때 안심이 된다. 


그러니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질문은 그만큼 힘이 세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볼 때, 기존 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성이 더해졌을 때, 자신과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때의 변화는 낯설지만, 그것은 의도된 낯섦이다. 


질문은 장군의 칼과 같다. 장군의 칼은 무거워서 꺼내 들기 힘들지만, 멋있게 하늘로 치켜든 칼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을 제압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종종 전쟁터에 비유되는 세상 속에서, 군중의 벽 속에 숨어 있거나 먼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질문의 힘이 장군의 칼처럼 나와 우리를 지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핵심 질문은 길고 긴말을 단숨에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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