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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Aug 12. 2020

아이 학원 어디 보내세요?

친구가 내게 자녀 영어 교육 방법을 물었다.
“야! 영어 선생님이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라고 말했지만 그 친구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학교 선생님들이 정작 자기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학교에만 있다 보니 특히 사교육에 대해서는 어둑하다.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 참석했다가 내게 국어 학원 어디가 좋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나는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칠 뿐, 한번도 국어학원에서 일해 본 적도 없고, 내 아이를 국어학원에 보내본 적도 없다 보니 어느 국어 학원에서 뭘 어떻게 가르치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나는 고지식하게도 아이들에게 교과서 학습활동의 답을 학원이나 자습서로 미리 알고 오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 그럴 시간에 본문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질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권하곤 했다.

대체로 학교 선생님들은 학원 정보 잘 모른다. 어쩌다 학생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을지는 몰라도 부지런히 학원 설명회 참석하고 이 학원 저 학원 발품 팔며 직접 다녀본 엄마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맘 카페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좋다는 학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데다 댓글만 믿고 학원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자녀 친구의 엄마들로부터 가까스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역시 쉽지만은 않다. 또래 아이들 어떻게 키우고 가르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하고 필요한 정보도 공유하는 줄 알고 엄마들 모임에 참석했다가 밤 12시가 넘도록 한 번 본 적도 없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남편분들이나 시댁 어른들에 대한 험담만 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듣다가 온 적이 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고급 정보일수록 엄마들 많이 모이는 모임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원 정보를 묻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된다는 것을.

영국에서 1년 동안 지내다 왔을 때, 나는 곧바로 복직을 해야 했고, 아이는 한 번도 영어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 됐다. 마침 아이 엄마들 모임이 있어서 참석했을 때, 아이들이 어느 학원에 많이 다니는지 물어봤다가 무안만 당했다.
“00 엄마는 뭘 그렇게 궁금해해요?”
“직장맘들이 그렇지 뭐. 주말에 정보 얻고 주중에 컴퓨터로 엄청 검색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언니들한테 전화 걸어서 이 얘기를 전했더니 한 언니는 별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다며 나 내신 욕을 해 줬지만, 한 언니는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거라고 말해 주었다. 전업주부인 엄마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이 학원 저 학원 직접 다니거나 여기저기 물어보며 열심히 알아본 정보인데 직장 다니는 엄마가 주말에 잠깐 만났을 때 알맹이만 쏙 빼가려 한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업주부인 엄마들끼리는 평일에 운동이나 브런치를 같이 하면서 친밀하고 유대감이 있는데 직장맘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다 보니 학원 정보를 물어보는 것이 이기적이고 얄밉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이러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내가 한 번 더 실수를 했다. 몇 년째 친하게 지내는 두 엄마와, 아직 친하지 않은(지금도 친하지 않은^^;) 내가 어쩌다 함께 자리에 있게 됐다.
A: 언니, 언니! 나 우리 애들 결국 그 논술 학원에 보내려고 해.
B: 진짜? 잘 생각했다~
A: 그치? 나도 그런 것 같아. 거기가 좋은 것 같아.”...
나: 어느 논술 학원이요?
A&B: 네?
분명 그들의 입안에 벌레가 들어갔던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그 표정이 나올 수가 없어...
순간, 화면이 정지된 줄.
그리고 난 분명히 이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문이 닫힙니다.”
셋이 있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견고한 강화유리 문이 철컹하고 닫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를 그 학원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보다 둘의 대화에 자연스레 끼어볼까 하고(그런 노력은 정말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이젠 알지만!), 그렇게 좋다는 논술학원은 어디인지 호기심도 생겨서 물어봤던 건데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져 버렸다. 물론 그 둘은 어느 논술학원인지 결국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안해서 당장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 이상하게 보일까 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쩔쩔맸다.

돌이켜 보면 ‘내가 그렇게 잘못을 했나?’ 싶으면서도 낯 뜨겁고 후회되는 이 두 번의 경험 이후 나는 절대로 엄마들 모임에서 학원 정보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관심 없는 남의 집 남편이나 시부모 얘기 집중해서 듣는 척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들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 맞는 한 두 분과 따로 만나는 것이 훨씬 즐겁고 편안하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식물의 안부도 궁금하다.

경쟁사회이다 보니 아이 친구 엄마들끼리도 학원 정보를 공유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탐탁지 않은 아이들이 자녀가 다니는 학원에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리는 것도 싫고, 반대로 친한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걱정이 될 수 있다. 아이들도, 그 엄마들도 친구인 동시에 경쟁자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사람들도 많다. 때로는 남편이나 가족보다, 아이 친구 엄마들끼리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고, 처지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고 의지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혹시 남이 알게 될까 봐 감추기만 한다면 좀 외로울 것 같다.

사람 사는 방식에 정답 없고, 각자 우선순위와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남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다만 뭐가 그렇게 중요하고,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질문을 계속 던져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아이들이 각자 다른 만큼, 맞는 공부 방법도 다양하다. 옆집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나 사용하는 교재가 우리 아이한테도 맞는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일타 강사라 해도 우리 아이 성향과는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떤 고급 정보도 일단 참고만 하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다.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나한테 새우튀김이 맛있다며 자꾸 권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 OpenClipart-Vector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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