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매일 오후 3시 30분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고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40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오후에 10km 마라톤을 하거나, 1500m 수영을 한다고 한다.
울리히 슈나벨은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러니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몇 시간씩 모니터를 쳐다보는 것은 인간 본성에 걸맞지 않은 일이다. 정신과 신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간단한 산책도 지속적으로 하면 건강을 증진시키고 기분을 북돋우는 효과를 낸다고 한다.
며칠 앓고 난 뒤 산책을 나갔더니 두 발로 땅을 느끼며 걷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 오종우가 <예술적 상상력>에서 "아팠다가 회복되면 주위의 모든 것이 산뜻하게 다가온다. 오감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감각들이 되살아 나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라고 말한 그대로다. 걷는다는 것, 내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복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가 보면 곳곳에 볼거리가 많다. 못 박는 듯한 소리가 나서 인부들이 가까이서 목공 작업하는가 했더니 야무진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 탄천 앞 돌에 가만히 앉아 피곤한 눈은 잠시 감고 귀만 열어 물소리 듣는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결 느끼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친 내 모습 위로받는 듯하다. 걸으면서 이어폰으로 듣는 강연에서는 "너무 조지지 말자.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김창옥)나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같은 명언을 접하기도 한다.
주말 아침 산책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주말 이른 아침은 고요하고 여유롭다. 화면을 보던 눈에 초록을 담는다. 이어폰을 꽂았던 귀에 새소리를 흘린다.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온전히 들이마신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인적 드문 거리를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벅찬다.
검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하루 중 햇볕을 볼 수 있는 때가 시체 검시하러 나갈 때밖에 없던 검사 일에 회의를 느끼고 하루 종일 햇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농부가 되었다. 직장인들 중에는 하루 종일 실내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볼에 와 닿는 바람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한 채....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은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도서를 읽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깐의 산책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 그럼에도 그 산책을 하기에 우린 너무 바쁘다. 당장 뭔가를 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일이 항상 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그다지도 급하고 중요한 걸까? 잠깐 산책할 틈도 없이 열심히 달리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가? 쏟아지는 햇살과 신선한 공기가 볼에 닿는 느낌을 희생하며 얻는 것은 안구 건조증과 거북목, 심하면 불면증까지.
산책은 시간이 남을 때 여유 부리는 것쯤으로 여기고 나중으로 미루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지고, 그런 나날이 수없이 반복될 뿐이다. 쉼 없이 움직이며 '산책 '이라고 하면 "한가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다.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산책을 미루다 오랜만에 나가 보면, 걷기는 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인데 그걸 왜 그렇게 미뤘을까, 나는 일상에서 무엇을 그렇게 붙잡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던 일을 일단 멈추고 산책부터 다녀올 일이다. 잠깐의 산책도 허락하지 못하는 삶은 가치와 매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