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놀이에 흠뻑 빠졌다.
사정이 있어 당분간 머물고 있는 시댁에서 점심 설거지까지 마친 후 노트북을 챙겨 들고 나왔다. 어디 가냐는 물음에
“글 쓰러요.”
라고 답하자 우리 아이를 비롯해서 모든 가족들이 크게 웃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잠깐 나갔다 올게요.”의 귀여운 명분이 돼 주고 있음에 감사하다. 귀여운 명분? 그렇다. 브런치 작가라는 것이 내게는 정말 대단하고 큰일이지만 주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너무 기쁘고 설레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친정 가족들 단톡방에 올려도 반응이 없었다. 분명 읽음 표시가 있는데도! 전화를 걸어서 억지로라도 축하를 받으려 하자 언니가 물었다.
“그거 뭐 하는 거니? 브런치 먹는 거냐?”
‘나를 제일 몰라주는 이들이 가족’이라는 말이 이럴 때 들어맞는구나 싶었다. 며느리가 너무 좋아하자 시아버님은 내 글들을 읽지도 않고 ‘라이킷’을 누르신다. 아버님은 물으셨다. 그거 누를 때마다 돈 나가는 거냐고.
나 역시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준 분의 브런치 홈에 들어가 봤더니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있었다. 작품 코너에 ‘매거진(magazine)'들이 있어서
‘우와, 이 분은 이렇게 작품들을 만드셨고, 잡지에도 연재가 되시나 보다.’
하며 놀라워했다. 알고 보니 매거진은 글을 종류에 따라 묶어 두는 것으로 미용실에 비치된 그런 잡지가 아니었다. 한 가지 성격의 글만 써야 되는 줄 알았는데 몇 가지 성격의 글을 쓰되, 따로 분류해 두기만 하면 되니 훨씬 자유롭게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이 자기가 매거진을 만들어 주겠다며 호기롭게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매거진의 이름은 학교나 교육 이야기를 담는 MC School(‘만춘 학교’의 약자), 서평을 담을 MC Book(‘만춘이 책’의 뜻), 내 일상과 생각을 담을 ‘MC 띵킹’로 정했다. MC 띵킹은 MC Thought나 MC Thinking이라고 하면 너무 길고 딱딱할 것 같아서 영어 발음을 한국어로 쓰되, ‘씽킹’보다는 띵킹이나 띵낑이 재미있는 것 같아서 둘 중에 고민하다 정한 것이었다. 매거진 주소는 영어로 적어야 했다. 남편이 다 만들었다며 한껏 올라간 어깨로 건네준 핸드폰을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더니, 이런! 매거진 주소가 ~thingking 이었다. thing king? 유물론자(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을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 무슨... 내 지적을 듣고 처음엔 틀린 거 없다고 우기던 남편이 민망함을 감추려 함인지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그러고는
“알았어, 내가 금방 고칠게!”
하더니 TV 동물농장을 보고 킬킬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같이 웃던 내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선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 만들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해서 핸드폰을 홱 뺏어왔다. 자칫하다가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한방에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나한테는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이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 싶었다. 핸드폰을 받아 든 나는 일단 새로운 매거진(주소:~thinking)을 만들고 기존 매거진(주소:~thingking)에 담아둔 글들을 보석 세공사가 핀셋으로 다이아몬드 조각 옮기듯 하나하나 옮겨 담았다. 기존 thingking방에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지 핸드폰을 껐다 켰다 하면서 확인을 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삭제 버튼을 눌렀다.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은 내 삶에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었다. <진심은 보이지 않아도 태도는 보인다>의 저자 조민진의 말대로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삶, ‘일인다역’을 꿈꾼다는 건 일상 속에서도 ‘이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는 믿음과 안도, 희망이 생김을 의미한다. 삶의 열정을 찾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카드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삶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선물한다. 하는 일이 많아지면 시간이나 정신적 에너지를 더 많이 쏟을지 몰라도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 시간과 에너지는 생기와 열정으로 되돌아온다.
아직 학교에서는 아무도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사실을 모른다. 앞으로도 아마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너무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출근한 어제 나는 평소보다 더 활기차고 행복했다.
아직 책 한 권 출간한 적 없는 풋내기 브런치 작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지 몰라도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내 오랜 소망과 기다림에 단물 같은 큰 선물이었다. 또한, 나만의 시간을 더 가치 있고 빛나 보이게 하는 새로운 명함이다.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