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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Sep 20. 2020

책 속으로 숨는 아이들

"나는 평생 책을 타고 떠다녔고, 어린 시절에는 내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책으로 만든 탑과 벽을 쌓아 올렸다." -리베카 솔닛

우리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은 아이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4교시 공강 시간이 있는  같이 식사를  보면 점심시간 시작종에 사서 선생님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있다. 식사  잠시 교정을 걷다가도, 심지어 식사를 하던 중에도 종이 치기 전에  급히 도서관으로 달려가신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도서관으로 오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 , 고를 가리지 않고 어느 학교에나 있으며 학교에 식당이 있을수록  수가 많다. 그리고 사서 선생님이나 다른 학교 선생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수가 점차 늘고 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오는 걸까? 같이  먹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교실 급식과 달리 식당 급식은 아이들이 반별로 입장은 하지만 원하는 친구들과 자리를 골라 앉은  같이 먹는다. 이때 같은 반에 친구가 없더라도 다른 반에 같이 먹을 친구가 있으면 기다려서 같이 먹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없는 경우 난감해진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경우 소그룹을 지어 친하게 지내는 경향이 있어서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갑자기 다른 그룹의 아이들과 어울려 밥을 먹기도 애매해서 그냥 식사를 거르기 쉽다. 그래서 어떤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런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마저도  학생이 다른 아이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면  이상 도움을 줄래야  수가 없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거르고 교실에 남아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 매번 밥을 거를 정도로 숙제가 급하고 책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다.  역시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4교시 수업 종료령이 울리면 다른 아이들은 미친 듯이 식당으로 뛰지만 이런 아이들은 별다른 미동이 없다. 대개는 선생님들도 수업 마치자마자 교실을 나가고, 담임선생님들도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곧장 가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누가 교실에 남아 있는지 모를  있다. 나는 수업  정리하는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이런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는 멋쩍게 웃으며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뭐에 익숙해진 걸까? 점심을 거르는 것에? 공복에? 아니면... 외로움에?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가서 책에 얼굴을 묻는다. 그나마 매일 보는 사서 선생님과는 인사도 나누지만 다른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 눈에 띄는 것은 원하지 않는 눈치다.  아이들에게
" 읽는  그렇게도 좋아?" "도서관 오는  그렇게도 좋아?"라는 질문은 가장 바보 같은 질문이다. 세상에 밥을 거를 만큼 책이나 도서관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것인가?  아이들에게 책과 도서관은 피난처일 뿐이다.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와 시선으로부터의 도피처. 자신만의 동굴인 셈이다.

국어 교사로서 평소 독서를 적극 권장하지만 학교에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가리지 않고 책만 읽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덮고  시선을 친구들에게 돌려 이야기 나누라고 하고 싶지만  아이들에게서 책을 뺏는 것은 퇴로를 차단하는 것처럼 시련을 주는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교과 성적이  나온다고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친구와 관계 맺기에 어려워하며 스스로 외로운 섬이 되고 있다. 책으로 성벽을 쌓으면서...


김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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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코로나 19 이전에 쓴 글이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올 해는 한 번도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볼 수 없었다. 방역을 위해 도서관 이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등교한 학생들은 식당에서 친한 친구들과 모여앉아 함께 밥을 먹는 대신, 번호표가 붙은 자리에 한 자리씩 떨어져 앉아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고 나간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교실에서도 시험 대형으로 한 사람씩 떨어져 앉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학교에 오는 날보다 안 오는 날이 더 많은 아이들. 올해 같은 반이 된 친구들하고도 서먹하기만 하다. 몇 년 전 우리 반에는 “ 그 친구하고 놀지 마”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가출한 아이가 있었다. 어쩌면 부모보다 자신을 더 이해해 주는 친구. 그만큼 청소년들에게 친구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 잘 어울릴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은 성장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얻지 못해서 속을 꽉 채우지 못한 채 웃자라는 나무를 떠올린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보다 친구들의 인정에 더 밝게 웃는다. 아이들의 표정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의 활기와 행복, 언제쯤 온전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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