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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학교 건축에 대해

by 양만춘

이 책의 제목인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해 저자는 정해진 답 없이 우리가 스스로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라고 자문해 볼 것을 권한다. 저자는 건축물을 만들 때 우리는 건축물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며, 그 건축물이 담아내는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집을 제외하고 일생에서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것도 성격 형성의 결정적 시기를 보내는 학교 건축에 대한 관심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책의 제1장과 다른 장에서 학교 건축과 관련된 부분을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보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

제1장.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띠는 데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서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학교 교실과 건물은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는 수십 개의 똑같은 상자형 교실을 모아 놓은 하나의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장을 넘으면 큰일 난다.

-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양계장 닭이 떠오른다.

-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 학교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특히나 우리나라 학교 건물은 더욱 그렇다. 아버지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닌 학교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똑같다.

-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공간에는 자연이 없다. -중략-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것은 자연이다.

-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 항상 똑같은 교실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수렵 채집의 시기와 농업시대를 거치면서 항상 자연에서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유전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자연의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예가 우리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는 변화하는 환경인 '자연'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환경과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이들을 실내 공간에 가두다 보니 그들이 갈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은 게임 같은 사이버 공간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냥꾼의 후예인 남학생들의 그런 경향을 더 많이 띤다.

- 우리 학교는 대략 남녀 각 15명씩 총 30명 정도가 한 반을 구성하고 있다. 이 중에서 대여섯 명 정도의 남학생이 축구를 잘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그 20퍼센트 정도 되는 학생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외부 공간인 운동장을 다 쓰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얌전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갈 곳이 없다. - 중략- 자그마치 12년 동안이나 말이다.

-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한다.

-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구트만에 의하면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라고 한다. - 중략- 아마도 마당이 있는 저층형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라난다면 친구가 세 배쯤 늘어나고 왕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 요즘 아이들은 2.4미터 높이의 아파트와 허리를 구부려야 할 만큼 낮은 1.5미터 높이의 봉고차와 2.6미터 높이의 교실과 2.5미터 높이의 상가 학원 천장에 짓눌려 산다. 우리는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형적인 공간을 통해서 점점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학교에는 3미터가 넘는 경사 지붕의 교실도 있어야 하고 둥그런 천장의 교실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모양의 천장이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 왜 마당이 있고, 쉬는 시간에 나무 그늘에서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없는가? ... 아이들에게 다양성 없는 건축 공간을 제공하고서 왜 그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는가?....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 스머프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다른 장에서도 학교 건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눈에 띈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자리'는 직함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인 공간이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면 권력이 생긴다. ... 교사, 목사, 운동선수 등 시선 집중을 받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건축적으로 군중이 바라보게 하는 공간 구조의 중심점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바라보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선생님이 강단에 서면 학생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강단을 향해 배치된다. 누구든 강의실 의자에 앉으면 싫든 좋든 몸과 시선이 단상을 향한다. 그런 공간 구조는 강단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권력을 가지게 만든다.

- 거대한 건축물과 공간을 좌우대칭이라는 규칙하에 묶어 놓으면 그 안의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공간 구성은 개인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 건물은 좌우대칭이 되면 안 된다. 좌우대칭의 공간에서는 사람이 억눌리기 때문이다.


학교 건축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은 특히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게 큰 설득력을 지닌다. 쉬는 시간 10분은 3~5층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오기엔 턱없이 짧다. 특히 옷을 갈아입거나 준비물을 챙겨 교과교실로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엔 화장실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쉬는 시간이 끝나 버리곤 한다. 간혹 축구를 좋아하는 몇몇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종이 치면 들어오기도 하는데, 땀범벅이 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물 좀 마시고 와도 될까요?"
교과 선생님의 가자미눈을 잠깐 보긴 하지만 그나마 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온 경우다.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이나 복도에서 머문다. 점심시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의 지적처럼 넓은 운동장은 축구를 하는 고학년 남학생들이 차지해 버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딱히 갈 곳이 없다.

학교 내에 잠시 산책하거나 앉아서 쉴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싶어도 애초에 학교 내에 나무가 충분하지 않다. 학교 내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서 쉴 수 있는 학교가 전국에 몇 군데나 될까? 그렇게 학교에서 주로 실내에 머물던 아이들은 또 다른 실내인 학원, 독서실, 집으로 간다. 틈이 나면 편의점에 잠시 들르는 것을 위안 삼으면서... 저자의 말처럼 사냥꾼의 후예인 남학생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이 자연의 변화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학교를 이따위로 지어 놓은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학교 건물과 교도소 건물 사진을 보니 정말 유사하다. 그 이후 차를 타고 다른 곳에 갈 때마다 학교 건물들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정말 다 비슷하고, 교도소같이 갑갑한 느낌이다. 학생들이 죄수들처럼 갇혀 지내는 것 같다. 교사들은 간수일까, 같은 죄수일까? 학생 신분으로 12년, 이후 교사 신분으로 보통 20년 이상 교도소같이 생긴 건물에서 지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도 건축의 관점으로 보면 그다지 매력이 없네. (교사들이 창의성이 없다면 그건 다 학교 건물 탓인지도 몰라 ^^;)

성냥갑 네다섯 개 쌓아 올린 듯한 교사동과 운동장. 전국 어디서나 천편일률적인 이러한 학교 건축 디자인은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최근에 제주도 친정에 가서 보니 내가 졸업한 학교 건물이 그때나 지금이나 외관상으로는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40회 졸업생인데 그때도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급식실 하나 지어진 것 빼고는... 지금은 학교마다 주차장, 체육관이나 더 늘고 있는 정도다. 학교 정원, 학교 숲, 산책길, 벤치 등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

학교에서 소위 '센 언니들'은 쉬는 시간에 주로 화장실에 머문다. 뒷담화도 하고 화장도 하면서... 이 언니들도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깔깔거리며 웃고, 떨어지는 꽃잎 주우며 소녀 감성을 뽐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감수성도, 상상력도 무럭무럭 자라날 것 같다. 비좁은 화장실 거울로 자기 눈썹이나 입술만 보다가 더 넓은 시각으로 자연을, 세상을, 친구들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공간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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