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건축에 대해
제1장.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띠는 데는 학교 건축이 큰 역할을 한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서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학교 교실과 건물은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는 수십 개의 똑같은 상자형 교실을 모아 놓은 하나의 네모난 교사동과 하나의 운동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장을 넘으면 큰일 난다.
-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양계장 닭이 떠오른다.
-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 학교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특히나 우리나라 학교 건물은 더욱 그렇다. 아버지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닌 학교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똑같다.
-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공간에는 자연이 없다. -중략- 아이들의 삶에 필요한 것은 자연이다.
-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 항상 똑같은 교실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수렵 채집의 시기와 농업시대를 거치면서 항상 자연에서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유전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반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자연의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예가 우리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는 변화하는 환경인 '자연'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환경과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이들을 실내 공간에 가두다 보니 그들이 갈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은 게임 같은 사이버 공간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냥꾼의 후예인 남학생들의 그런 경향을 더 많이 띤다.
- 우리 학교는 대략 남녀 각 15명씩 총 30명 정도가 한 반을 구성하고 있다. 이 중에서 대여섯 명 정도의 남학생이 축구를 잘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그 20퍼센트 정도 되는 학생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외부 공간인 운동장을 다 쓰고 있다. 그렇다 보니 얌전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갈 곳이 없다. - 중략- 자그마치 12년 동안이나 말이다.
-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한다.
-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구트만에 의하면 '1,2층 저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라고 한다. - 중략- 아마도 마당이 있는 저층형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라난다면 친구가 세 배쯤 늘어나고 왕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 요즘 아이들은 2.4미터 높이의 아파트와 허리를 구부려야 할 만큼 낮은 1.5미터 높이의 봉고차와 2.6미터 높이의 교실과 2.5미터 높이의 상가 학원 천장에 짓눌려 산다. 우리는 창의적인 아이들을 기형적인 공간을 통해서 점점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학교에는 3미터가 넘는 경사 지붕의 교실도 있어야 하고 둥그런 천장의 교실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모양의 천장이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 왜 마당이 있고, 쉬는 시간에 나무 그늘에서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없는가? ... 아이들에게 다양성 없는 건축 공간을 제공하고서 왜 그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는가?....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 스머프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다른 장에서도 학교 건축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말이 눈에 띈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자리'는 직함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사람이 위치한 물리적인 공간이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면 권력이 생긴다. ... 교사, 목사, 운동선수 등 시선 집중을 받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건축적으로 군중이 바라보게 하는 공간 구조의 중심점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바라보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선생님이 강단에 서면 학생들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강단을 향해 배치된다. 누구든 강의실 의자에 앉으면 싫든 좋든 몸과 시선이 단상을 향한다. 그런 공간 구조는 강단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권력을 가지게 만든다.
- 거대한 건축물과 공간을 좌우대칭이라는 규칙하에 묶어 놓으면 그 안의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신을 작은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공간 구성은 개인의 존재감을 억누르는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 건물은 좌우대칭이 되면 안 된다. 좌우대칭의 공간에서는 사람이 억눌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