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와 바늘
이석연 대통령은 취임 후 주요 장관 및 요직의 추천 리스트를 민철을 통해 받아 들었다. 민철은 선거 기간 동안, 그리고 오래전부터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은 인물들의 정보를 수집해 두었다. 이석연 대통령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주요 관직에 일본의 프로젝트와 연관된 인물들을 일부러 임명했다. 이들은 비리와 역사 왜곡, 경제를 좀먹으며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덩어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큰 위험이기도 했다. 실패했을 경우 150년이 아닌 15년 안에 대한민국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민철은 대한민국 국민과 자신의 팀원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이 계획을 밀어붙였다.
기대했던 대로, 여당과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내세웠다"며 맹렬하게 공격해 왔다. 이석연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며, 민철이 설계한 대로 철저히 묵묵하게 행동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이석연 대통령을 ‘불통의 지도자,’ ‘무능력한 정치인’으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이석연은 점점 국민과 멀어져 갔다. 국민들 눈에는 마치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들은 배제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정치 세력과 밀접한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들이 점점 더 정치권을 차지해 갔다.
어느 늦은 밤, 이석연 대통령과 민철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석연 대통령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민스러운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민철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요즘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괜찮으십니까?"
이석연 대통령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철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묘한 결의와 피로가 섞여 있었다.
"민철 씨, 솔직히 말해서 마음이 편치가 않네. 지금 내가 마치 침몰하는 배에 선장이라도 된 기분이야.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요즘 들어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네."
민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통령님, 마음이 흔들리시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시면 됩니다."
"다음 단계는 뭔가?" 대통령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철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대통령님,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지면 야당에서도 하야 요구가 시작될 겁니다. 그리고 하야 후, 새로운 정권이 특검을 통해 저희를 조사하게 되면 일본과 손잡은 정치인들도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석연 대통령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잠시 말없이 책상 위의 서류를 훑어보다가 한 문장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조금이라도 밝아지겠지?"
민철은 그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님,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결국 이념과 세대, 지역 갈등 속에서 분열되어 일본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대통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그렇다면 해야지. 역사에 내 이름이 어떻게 남든… 이 나라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감수할 수 있네. 자식이 없으니 나를 기억해 줄 이들도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우리의 노력을 알아줄 이가 있을 거라 믿네."
창밖에서 들려오는 하야 요구의 외침에 이석연 대통령의 눈빛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날 밤, 민철은 대통령과의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는 순간, 검은색 밴이 그의 차 옆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의 명치에 차가운 칼을 들이댔다.
"조용히 하고 차에 타." 건장한 남성이 민철의 머리를 꾹 누르며 명령했다.
"누구십니까?" 민철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손과 눈이 묶인 채 어딘가로 끌려갔다. 차는 어둠 속을 질주해, 외딴 공장 같은 곳에 멈춰 섰다.
어느새 그의 눈을 덮었던 천이 벗겨졌다. 낯선 남자가 그를 보고 비웃고 있었다.
"김민철 씨, 반갑습니다. 우리 소개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얼마 전, 당신과 내통하던 일본의 정보통이 우리에게 모두 털어놨소. 지금쯤 바다 밑바닥에서 편히 누워있을 거요."
그의 한국어는 어딘가 어색했고, 전형적인 일본 억양이었다. 민철은 입을 다물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멀리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민철이 말이 없자 야구 방망이를 들고 다가왔다. “우리와 계속 싸우겠다고? 어리석은 자식… 계획이 뭔지 불지 않으면 넌 오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질 거야.”
말이 끝나자 방망이는 민철의 입술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는 비명을 질렀고, 터진 입술에서 핏덩이가 떨어졌다. 귓속에서 윙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신이 차려지나? 넌 오히려 우리를 돕고 있어. 우리의 존재만 공개하지 않으면 말이지.” 남자는 민철의 입술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다음 계획을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바다 밑에서 친구들과 함께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다.”
민철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너희 모두 감옥에 보내는 게 내 계획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망이를 든 남자는 다시 한번 민철의 다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그의 비명이 공장 안에 울려 퍼졌고, 민철의 인내심은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본 너희는 여전히 고문에 능숙하군. 과거에서 변한 게 하나도 없지, 하하."
그때 갑자기 밖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외쳤다.
"모두 꼼짝 마! 대한민국 경찰이다!"
대통령이 선물한 시계에 위치 추적기가 내장되어 있었던 덕분이었다. 민정수석은 위치를 추적해 경찰을 긴급 출동시켰다. 특수부대는 현장에 있던 8명의 남성을 제압하고, 피투성이가 된 민철을 구출해 냈다.
민정수석은 피로 얼룩진 민철을 보고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민철 씨, 다행히 늦지 않았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민정수석님을 다신 못 볼 뻔했네요,” 민철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응급실에 실려 온 민철의 상태는 심각했다. 의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그를 보며 신속하게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눈가엔 멍이 들어 있었고,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고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 날, 뉴스 속보
"어젯밤 일본 야쿠자 출신 남성 8명이 대한민국 시민을 무차별 폭행하고 고문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급히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모두 체포해 신속히 취조에 들어갔습니다. 피해자 김민철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극심한 고문을 겪으며 정신적 충격이 큰 상태로 전해졌습니다."
뉴스를 들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본의 직접적인 폭행과 고문이라니, 이 사건은 반일 감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현재 정권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15%로 떨어진 지지율을 보고받은 청와대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날 저녁, 전국 각지에서 촛불이 켜졌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이 모여 “하야하라!”는 외침을 터뜨렸다. 전국적으로 번진 시위는 점점 거세졌고, 결국 이석연 대통령은 압박에 못 이겨 하야를 선언했다.
이석연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그를 둘러싼 권력층의 어두운 비리와 일본과의 부도덕한 유착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영부인조차 특검의 조사를 받으며 부동산 투기와 정치 개입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국민은 허탈해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바라며 다음 대통령으로 김재훈을 선택했다.
김재훈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강력한 특검을 진행했다. 각계각층에서 일본의 후원을 받은 정치적 인물과 세력가들을 가차 없이 단죄했다. 그 결과, 약 400명에 이르는 인사들이 구속되었고, 그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김재훈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을 목표로 ‘반민족 특별법’을 제정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시스템 개혁을 약속했다.
민철은 이번 사건으로 얼굴에 영구적인 흉터를 남겼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마음은 영화처럼 굴곡진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민철은 호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 그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소중한 지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수현과 술자리를 마련했다.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이 채워졌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민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현 씨,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죠?”
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대표님… 오히려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검찰에서 대표님 이름만 얘기하지 않았어도..."
민철은 손을 저으며 수현을 다독였다.
"아니에요, 제가 그 입장에 있었어도 같은 결정을 했을 거예요. 일이 잘 마무리되어서 이제야 마음이 편하네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가고 싶었어요."
수현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대표님, 다시는 못 뵐 줄 알았어요…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식당의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남성 네 명이 들어와 민철을 둘러싸며 말을 걸었다.
“김민철 씨, 저희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그들은 신분증을 내보이며 검찰이라고 밝혔다.
민철은 당황스러움에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수현이 이를 막으려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민철은 밤샘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전에 차이나타운과 S기업에서의 불법 스피커 설치와 관련된 조사를 받았다. 그는 민정수석이 도와줄 거라 믿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사 도중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이전에 민철을 조사했던 검사였다. 그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인정하듯 말했다.
"김민철 씨, 참 운도 좋으시네요. 이렇게 또 빠져나가다니… 하지만 세 번째 행운은 없습니다."
검사는 냉소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민철은 민정수석이 자신을 구해줬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조사가 끝난 후, 배가 고파 가까운 국밥집에 들러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따뜻한 국밥이 그의 손에 놓이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국밥을 한 입 떠먹던 중, TV 화면에 긴급 속보가 떴다.
"속보입니다. 차이나타운과 S기업에서의 불법 스피커 설치 사건과 관련하여 S기업의 한 직원이 스피커 설치를 폭로한 동료를 야구 방망이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찰은 폭행범 김 씨가 차이나타운 사건에도 연루되었음을 확인했으며, 김 씨는 자백을 통해 자신이 관련된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민철은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내 흐르는 눈물로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수현이 모든 것을 뒤집어쓴 것이다.
그때, 휴대전화에 익숙한 번호로부터 문자가 왔다.
“대표님께 예약 문자로 보내드립니다. 이 문자를 보고 계실 때면, 대표님은 호주로 가는 비행기 안에 계시겠죠? 모든 것은 제가 안고 갈 것입니다. 이게 저에게도 마음의 빚을 갚는 길입니다. 대표님은 부담 갖지 마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환경은 더 나은 사람을 만듭니다.”
민철은 수현의 결단과 희생에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수현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그녀의 고귀한 결단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다음날 조용히 눈을 감은 민철은 깊게 숨을 내쉬며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그는 천천히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