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2011년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10년을 묵히다가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장편 시나리오가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써 재끼는 경향이 짙은 사람으로서 장편은 힘에 부칠 뿐인데, 여즉 붙들고 있는, 깊이 애정하는 글이다. 어떡허든 중심을 잡아 보려고 수를 쓴 것이 씬 별로 일일이 오려 붙여 카드를 만들고, 그 카드를 이리 섞고 저리 섞어 본다는 것이 나름의 꼼수였는데... 여간 고단한 작업이 아니다. 일일이 칼로 재단하고 또 붙이고. 워낙 고단한 것을 좋아하니 이런 수작업, 기꺼울 따름이지만 내용을 생각하면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그래도 모처럼 즐거웠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3고를 1년 채우기 전에 완성했다. 설 선물(?)로 팀원들에게 파일을 보내고 초조한 마음을 달랠 겸 출력한 원고를 한 장 한 장 오려 붙이고 나니 이런다고 중심이 잡힐까 싶지만 뭐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면서 나를 얼러본다.
3년 전부터 이런 공모 저런 공모 다듬고 또 다듬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접수했는데, 물론 다 감감무소식이었지만, 안 쓰는 것보다야 쓰는 것이 좋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본업이고, 돈 버는 일이 부업인 사람이니까.
글 쓰는 몸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거들뿐, 몸이 잘 쓸 수 있도록 잘 보살펴야지. 나는 몸으로 쓰는 사람, 심장에 고인 핏물을 잉크 삼아 쓰는 사람.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쓰는 일’ 뿐이니까. 그게 글이든 마음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