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거리를 걷다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상형을 만나게 된다. 열에 열은 각양각색의 female, 어쩌면 장래희망 100가지 중 하나였을지 모를 '그녀'. 오늘도 거리에서 이상형과 스쳐 지나면서 떠올린 기기묘묘한 상상의 끝은 자수성가였다. 의식의 흐름이란 고양이 같은 것이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는 만큼 이해와도 공감과도 멀어지게 마련이니까. 어쨌든,
나는 자수성가했다. 알약 하나 못 삼킨다는 이유로 구둣주걱으로 얻어맞고 세 자릿수 나누기 세 자릿수를 못한 다고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으로 얻어맞던 어린이가, 숱한 시행착오(이불킥을 넘어 파쇄기에 넣어버리고 싶게 끝에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우며 생각을 입으로 꺼내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행여 이 한 마디가 타인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끊임없이 검열하고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잘못이란 잘못은 모두 제 탓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이 '내 탓'의 지분 팔 할은 천주교다. 미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슴까지 팡팡팡 치며 '내 탓이오'를 외게 했으니 그렇다 해도 될걸?). 니미럴,
무엇보다도 엄마의 남편과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달라지기 위해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을 그만두기 위해서 얼마나 혹독한 수련을 했던가. 핏줄을 끊을 수도 핏물을 갈아엎을 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혹독, 자비 한 톨 없는 그 가혹함은 결국 우울증이라는 한 우물을 고독하게 파고 또 팠고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그 우물 메우느라 기 천만 원 이상을 써 재끼고 있는 중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자수성가 아닌가. 엄마와 엄마의 남편과는 이미 열서너 살부터 한 번, 스무 살 때 한 번 더 독립하고 여태 홀로 서려고 노력했으니 이만하면 자수성가했다고 해도 괜찮다 싶다. 독립할 때마다 혹독하게 나를 벼르고 별렀으니 자수성가한 거 맞지.
그런데 '진짜로' 홀로 서지 못했다. 가장 필요했던 엄마와 엄마의 남편을 대신해 숱한 사람들이 내가 쓰러지지 않게 곁을 지켜 주었다. 니미럴, 독립의 길은 이리도 멀고 먼데 굳이 해야 하나 싶고 그래도 자수성가했으니 됐다 싶고 그래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오롯이 혼자 설 수 있었으면 싶고. 무엇보다 그리 혼자 섰을 때 외롭기 보다 고독했으면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