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修洞 三十五番地 이야기 : 流浪船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띄엄띄엄 느릿느릿, 여자는 그래도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여자 앞에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람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였으나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동그란 모양이었지만 손으로 그린 것처럼 완벽한 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동그랗고 예쁘기까지 했다. 여자는 잠시 이정표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등줄기에 전해지는 기둥의 서늘한 촉감은 이내 여자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물들었고, 여자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볼 마음이 생겼다. 지금까지 걸어왔으니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앉아서 보니 또 낯설었다. 처음으로 여자는 제가 길치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정표를 볼 수 있고, 이정표에 의지할 수 있고, 늘 보는 풍경을 낯설어 할 수 있다는 것이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다시 걸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가 이정표 기둥과 팔짱을 끼곤 중얼거렸다.
여기 서 있어줘서 고마워.
이정표: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말랑, 꿈꾼문고, 1판 1쇄 2020년 12월 7일, 12000원
내 이름은 샤이엔,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샤이앤, 꿈꾼문고, 1판 1쇄 2020년 12월 7일,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