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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았고, 결과도 받았기 때문에 술을 잠시 쉬는 게 어떨까 싶었는데 -생각만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핑곗거리가 생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오직 주신만이 알 일이지.
그 핑곗거리라는 것은 '상을 엎었다'는 것. 문자 그대로 상을 엎을 수는 없었고, 그간 참아왔던 말들을 터뜨렸을 뿐인데, 벌떡 뛰쳐나와 집에 가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어흥, 하고 막무가내로 울려고 했는데 때마침 '기다려' 사인을 받아서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사실 몇 만 원을 주고서라도 택시를 타고 돌아올까 잠시 고민했는데 갑작스럽게 택시비가 아까웠고, 이래저래 어쨌든 덕분에 얌전히 집에 왔고 집에 오는 동안 분노는 식어버리고 가쁘던 숨도 잦아들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집에 와서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있어 보이지만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렸다', '집까지 걸었다' 정도의 굉장히 간단한 과정이었다- 찾아든 것은 뭐, 당연하게도 술.
무려 '칵테일'이어서, 이 글을 여기에 올려야 하나 저기에 올려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알코올 지수가 더 높으니까 이곳에 올리기로. 각설하고,
이 앙증맞은 칵테일은 우리 마을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해 어른이날 행사를 주최하며 마련한 칵테일이다. 우리 마을 좋은 마을. 이 칵테일을 구입하는 것이 내 몫이었기 때문에 구입하면서 내 몫으로 세 캔을 따로 구입했었고, 옳다쿠나 이 세 캔을 연달아 마셨고, 쪼그만 것이 도수는 제법 높아 기대 이상으로 취한 상황임에도 굳이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여전히 기분이 엄청나게, 언짢기 때문이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은 언제나 언짢은 일이다.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언짢다. 게다가 이 쪼그만 것은,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극심한 두통을 유발했기 때문에 더더욱 언짢다.
생각하지 말라는 말, 그게 됐으면 이날 이때껏 언짢지 않았을 것이다. 술병을 비워 나를 채우려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술병을 비워 나를 채우려 든다. 내 그릇은 아직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