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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24. 2024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 난 네 엄마니까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시간이 흘러, 네가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었어.


중성화 수술은 반드시 필요하다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네가 아파야만 하잖아.


나는 네가 최대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좋은 병원을 찾아 손가락으로 발품을 팔았지.


인터넷 속 지역 방방곡곡 수소문해 찾은 곳은

잠실 즈음 위치했던 걸로 기억해.


병원에 갔더니 나처럼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견주들이 많았어.

그들 중에는 이미 수술을 마치고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견주들도 있었고.


다리를 떨고 있는 견주,

손톱을 물어뜯는 견주,

회복실에서 눈길이 떠나지 않는 견주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괜찮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다 똑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몇 시간 뒤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저 모습을 하고 있겠구나'라는 것도.


너에 대한 간단한 진료와 상담을 마쳤고

너는 수술 대기실에 들어갔어.


시간이 꽤 오래 흐른 이야기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너는 마취 주사를 맞은 모양이야.


수많은 깨갱 거리는 목소리들 사이로

네가 깨갱 거리는 목소리가 내게 들리더라.


다른 강아지들의 외침도 안타까웠지만

내 귀에는 네 소리만 들렸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한 적이 있거든?

그때 우리 엄마가 대기실에서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내 몸을 칼로 쫙- 찢는 소리가 밖까지 다 들렸다는 거야.


현실적으로 그럴 리가 없잖아.

의학 드라마에서만 봐도, 칼로 살을 그을 때 장면을 생각해 봐.

옆에 심장 박동수 체크하는 기계에서

삐, 삐, 삐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안 들리거든.


그런데 네가 수술을 하러 가니까

엄마가 그때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어.

의사 선생님이 네게 하는 모든 행위들이 내 귀에 다 들릴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난 네가 수술하는 내내

그곳에서 두 발 뻗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어.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

카페로 자리를 옮겨 너를 기다렸지.


만약 수술이 오래 걸렸더라면

나는 너만큼이나 너무 힘들었을 거야.

너는 몸이, 나는 마음이.


수술이 다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그제야 몸을 덜덜 떨며 네게로 갔어.


네가 아파서 수술한 것도,

네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걱정이 됐던 걸까?


그런데 내가 걱정 한 이유를 병원에 가면서 알겠더라고.

내가 너를 병원에 맡기자마자 나갔었잖아.

그러니까 다른 강아지들이 수술이 끝났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상상할 수 없었던 거야.


'확인하고 나올걸...'

미처 보지 않고 나온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온갖 상상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황급히 뛰어왔는데,

회복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고.


너를 데려가기 전,

앞으로 네가 회복할 때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의사항을 들었고

수납을 마친 뒤 너를 마주할 수 있었어.


네가 나에게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게다가 목에는 플라스틱 넥카라를 하고 있어서

불쌍한 마음이 배가 되었지 뭐야.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는데

때마침 데스크 직원이 쿠션 형태의 파란색 넥카라를 추천해 주는 거야.


굉장히 비싼 가격임에도,

나는 조금이라도 네가 편안했으면 해서 바로 구매했지.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인가?' 싶기도 하네.

데스크 직원이 내 눈을 보고 바로 알아챈 거지.


나는 쿠션 넥카라로 약간의 죄책감을 덜어낸 채,

너를 끊임없이 보살폈어.


그런데 그때는 네 체구가 작았잖아.

지금은 네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져서 절대 들어가지 않더라.


이거 엄청 비싼 건데...

방석으로라도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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