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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26. 2024

네게는 천국인 장소, 펫쇼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강아지 박람회가 열렸어.

이름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펫쇼’, ‘펫페어’라는 명칭이 따라붙었지.


너를 데리고 처음 박람회를 갔을 때는

잠실 롯데월드 부근에서 열리는 거였어.


지하철을 타고 가기에는 당시에 유모차가 없었고

가방 안에 넣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무게가 꽤 나가는 너를 들고 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지.

그렇다고 내가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래서 나는 택시를 선택했어.

차를 거의 타본 적이 없는 너는

차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고

가는 도중에 구토를 했어.


나는 예상치 못한 너의 행동에 놀랐고

택시 기사님께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몰라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지.


택시 기사님들은 새벽에 차를 몰면

음주한 승객들을 많이 태웠을 거야,

그럼 차 안에서 구토를 한 사람도 꽤 봤을 거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도 누구보다 뛰어날 거라 생각해.


그런데 그때는 그 생각을 못 했어.

그래서 내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할 때

기사님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응대하더라고.


내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치우긴 했지만,

토사물이라는 게 치워도 냄새는 잘 사라지지 않잖아

결국 나는 택시비에 청소비까지 더해 돈을 지불하고 내렸어야 했지.


택시에서 내려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네가

얼마나 어이없던지.


시식코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네 코가 킁킁거리기를 멈추지 않을 때,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평소에는 내가 먹다 흘린 작은 밥풀이라도

주워 먹기 위해 준비 태세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는 네가

얼마나 귀엽던지.


집중해서 먹을 때면

눈이 평소보다 세 배만큼 커져서는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너무 많이 먹어서 볼록해진 네 배가

혹시 터지진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한 내 모습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석촌호수랑 이어져 있어서

산책까지 할 수 있으니 정말 완벽했어.


게다가 포토존도 준비되어 있어서

네 인생샷들을 찍으면서 행복하기도 했지.

물론 이건 네 행복이 아닌 내 행복이었겠지만

너도 웃는 나를 보며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날 네가 뷔페처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난 참 기뻤어.


너 또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으니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겠지.

이제 너는 박람회를 가면 바로 아는 거 같아.

‘아, 오늘 먹는 날이구나.’

‘맛있는 걸로 잘 골라 먹어야겠다.’


그래서 나는 처음 펫쇼를 경험한 이후로

박람회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매번 너와 함께 갔지.


그런데 네가 아무리 가벼워도

먹을 거 앞에서 하두 날 뛰어서

이후에는 손으로 안고 다니지는 못 하겠더라.


그리고 워낙 겁쟁이라

조금만 큰 강아지가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너는 딱딱한 바위가 되어서는

움직일 줄 몰랐잖아,


사람들이 붐벼서 빨리 걸어가야 하는데

다행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견주라

강아지의 행동을 서로 이해해주고 있었지.


한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당장 유모차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아.

그래서 2만 원인가 하는 가장 저렴한 유모차를 장만하고 아직도 너를 그 안에 넣어 요리조리 참 잘도 다닌다.

개모차라고 불리는 그 유모차를

나는 누구보다 가장 잘 이용하는 것 같아서

갑자기 뿌듯하기도 하네.

이미 2만 원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봐.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지하철로 널 데리고 다닐 때

주변의 시선들 같은 거 얘기하고 싶네.

다음에는 그 얘기를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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