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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29. 2024

요즘 애들은 애 안 낳고 개 키우는 게 문제야~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아지 너와 나는

부모님과 나의 자취방을 오가기 위해

항상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


처음 네가 지하철을 탈 때까지만 해도

문이 닫히는 소리에 벌떡-

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떡-

물고기가 물 밖에 나와 몸을 펄떡이듯

너는 가방에서 몸을 가만히 있지 못했어.


그래도 다행인 건

너는 나를 닮아 워낙 왈가닥 하는 성격인데,

지하철 안은 네게 크게 어색했는지

짖지도, 낑낑 거리지도 않았다는 거야.


혹시나 집에 가는 내내

네가 칭얼거릴까 봐 난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라.


네가 가방 안에서 불안해하는 모습은 미안했지만

잠자코 얌전히 있어주어 참 많이 고마웠어.


나는 말도 하지 못하는 너를 두고

혼잣말을 셀 수 없는 별만큼 많이 했지.


“어 맞아~ 엄마네 집에 가는 거야~

어기에 있는 엄마 있지?!! 머리 빠글빠글한!!

거기 가는 거야~ 금방 갈 거니까 좀만 참아~“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강아지임을 간접적으로 보이면서, 네 불안함을 잠재우는 게 지하철을 타는 내내 나의 미션이었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더워서 그러는지

헤헤- 헐떡이는 네 숨 넘어가는 소리에

나는 중간중간 간식도 쥐어주며

참 오래도록 지하철을 탔었다.


그런데 네 몸이 커지고

가방에 몸이 들어가긴 하지만 불편함을 느낄 때쯤,

다른 상황들도 고려해 유모차를 장만했지.


너도 알다시피 9호선은 늘 사람이 많잖아.

시간대를 잘 잡아도 사람 적은 걸 보기 어려운 노선인데,


지옥철만큼 사람이 미어터질 때면

네 유모차가 있는 게 괜히 죄지은 것 같았어.


유모차 곁에 있는 사람들은

유모차를 밀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유모차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공간이 빈 줄 알고 계속 밀어 넣기 바빴으니까.


그리고 유모차가 공간 차지를 많이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만차일 때면 유모차를 빼기도 힘들잖아.


게다가 네 유모차는 단돈 2만 원어치의 값싼 제품이니, 말을 또 얼마나 안 듣게요?

작동하는 방법을 수업 듣고 익혀야 할 정도라니까?


얼마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지.

그래서 나는 늘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공략해.


이뿐만이 아니야.

지하철 좌석 중간에 자리가 비어도

유모차 때문에 나는 앉을 수가 없었지.


양끝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줄곧 서서 가거나

이 두 가지가 내 선택지였는데,


지금은 네가 지하철에 익숙해져서

지하철을 타면 몸 뉘일 자리부터 익숙하게 잡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더라.


그래서 이제는 종종 네 유모차를 벽 측에 고정시켜 두고

나는 좌석에 앉아 있기도 해.

물론 내 시선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네 유모차처럼 네게 고정되어 있지만 말이야.


내 앞이나 옆에 유모차를 둘 공간이 충분히 있더라도 너를 데려오지 않는 건,

지금까지 경험으로 살펴보았을 때

강아지 때문에 옆에 앉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고.


나와 너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나는 너를 조금 멀리 두되 시선은 고정하기로 결정한 거지.


물론 모두가 기피하고 그런 건 아냐.


너를 보고 쪼르르 달려와

처음 보는 나에게 너에 대한 질문들을 한다거나,


묻지도 않은 본인의 강아지 얘기를

스스럼없이 몇 정거장 내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엽다…!!’

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과


만져도 된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만지고 있었으면서

만져도 되냐고 묻고는 했지.


문득 궁금한 건, 넌 모르는 사람이 널 만져도 괜찮니?

네가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모두를 좋아하는 건 아닐 거잖아.


사람이 사람한테 물어보는 것도 웃겨.

내가 네 마음을 어찌 안다고

된다 안된다 판단할 수 있겠냔 말이야.


모든 에스컬레이터가 마찬가지겠지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유모차 탑승이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되어 있어.


나는 그래서 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는데

엘리베이터 주 고객층은 할머니, 할아버지였지.


너를 유모차에 태우고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르신들에게 듣는 얘기는 비교적 다양했어.


유모차에 강아지가 있는 걸 확인한 한 어르신은

‘아이고~ 개 팔자가 상팔자인 게 진짜네~‘

라고하고

일행도 아닌 또 다른 어르신은 맞장구를 치며

‘상전이 따로 없어~’ 하곤 했지.


어떤 어르신은 강아지가 뽀얀 게 참 귀엽다고 했지만

다른 어르신은 개새끼를 지하철에 데리고 타면 어떡하냐고 성질을 내기도 했어.


내가 듣는 건 괜찮은데

네가 듣고 상처받을까

난 그게 너무 화가 나더라.


강아지가 뭘 아냐고들 하지만,

안내견이 문전박대당하고

우울해하는 모습들이 난 많이 봤거든.


데리고 가면 안 되는 곳에 데려간 것도 아닌데

나와 네가 그런 아쉬운 소리를 왜 들어야 하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유모차에 사람이 안 타있고 개만 맨날 타있어!!”

“요즘 애들은 애도 안 낳고 개만 키워서 문제야 문제”

쯧쯧 거리며 손지검을 하기도 해.


한편으로는 “애기가 애기를 데리고 다니네~“

라고 하면서 먼저 엘리베이터 탑승을 양보해 주는 어르신도 계신데 말이야.


텔레비전에서 보면

노년에 배우자 잃고, 자식은 따로 살고

적적해서 강아지 키우는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


그런 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었더라면

나를 이해해 주셨을까? 싶기도 해.


만약 그분들이었다면,

강아지가 그냥 동물이 아닌

가족 구성원 중 하나라는 걸 알 테고

이렇게 함부로 말하거나 대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문득 착잡한 마음이 드네.

지하철 하나를 타더라도 불편한 시선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강아지 키우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말들을 감수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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