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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31. 2024

골프채로 강아지를 폭행했습니다.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심각한 제목의 떡밥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얘기를 해야만 하기에

뜬금없는 내용이어도 읽어주길 바란다.


우리 부모님은 내 브런치북을 보신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글을 올리는데도

빠짐없이 내 글을 읽으신다.


나는 자취 7년 차다.

그래서 부모님과 떨어져 산 세월이

인생의 3분의 1인데도,

부모님을 떼어놓고는 글이 잘 쓰이지 않는다.


아빠는 ‘우리 딸이 아빠 마음을 잘 아네.’

라는 감상평을 늘어놓는 반면,

엄마는 ‘엄마 욕 좀 그만해!!’

라며 성질을 줄곧 내시곤 한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너 엄마가 아지 골프채로 때린 건 절대로 적지 마라.’

아무튼 이번에도 엄마에게 미안하게 됐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


엄마가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골프채를 가지고

자세 연습을 한다며 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아지는 소파 위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엄마를 따라 고개를 함께 움직였다.

고개를 움직이는 게 지칠 때쯤이면 눈만 휙휙,

그러다 스르륵 눈이 감겨 잠에 들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지는 몰랐다.

그 단단한 골프채가 아지에게 위협이 될 줄 말이다.


아지는 거실에서 방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문제는 엄마가 아지가 움직이는 줄 모르고 골프채를 휘둘렀다는 것이었다.


순간 엄마의 눈에 큰 골프공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 것이었을까.

아지는 엄마의 골프공이 되어 골프채에 맞았다.


아지는 깨갱!!- 소리와 함께 부엌에 있는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엄마는 놀란 마음을 움켜쥐고 아지한테 다가갔으나

아지는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아지가 맞은 곳은 눈,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눈으로 아지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아지야!!! 아지야!!! 괜찮니?!!!

너 눈 맞았어?!! 어떡해!!! 아이고 어떡해!!!‘

엄마의 마음은 롤러코스터가 정상에서 떨어질 때처럼 쿵- 하고 내려앉았을 테다.


그래도 엄마는 침착하게 병원에 갈 채비를 하고

아지를 안고서 부리나케 달려갔다.


엄마는 병원이 집 앞에 있었음에도

천릿길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천근만근 마음이 아주 무거웠을 것이다.


‘아지가 시력을 잃으면 어떡하지?’,

‘뇌도 같이 맞아서 뇌진탕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엄마는 병원에 진실을 고할 수 없었다.

‘제가 강아지를 골프채로 때렸어요.’라고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거짓말로 운을 뗐다.

‘얘가 어디 부딪혔는데 눈을 잘 못 뜨네요… 괜찮을까요…?‘


병원에서는 시력 검사를 포함해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괜찮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약은 넣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결국 아지는 매일 눈에 약을 넣어야 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진료 후에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두 번 다시는 집에서 골프 연습 안 해야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롤러코스터 탑승이 끝나고

‘두 번 다시는 타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지의 눈 상태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안 엄마는 그제야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아지를 골프채로 실수로 때린 일과 병원에 갔는데 괜찮다는 소견을 들은 것까지 이야기했다.


말투는 아무 일없었다는 듯 말했지만,

내가 듣기로는 아직 엄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는 아마 내게 말하는 그 순간 아직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거나 그때를 회상하니 다시금 놀란 상태지 않았을까 싶다.


이후로 엄마는 집에서 연습을 하지 않았냐고?

아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엄마는 집에서 골프 연습을 종종, 아니 자주 했다.

아지는 그럴 때마다 침대 밑으로 숨거나

식탁 밑에 있는 의자에 숨어서는

엄마의 연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지는 청소기나 우산과 같이 골프채와 비슷한 형태의 물건이 나타나도 겁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아프긴 정말 아팠나 보다.


그래도 아지는 엄마가 골프채를 들고 이리 오라고 하면 간다.

‘아지야 괜찮아~ 와도 돼!

이제 엄마 엄청 조심해서 괜찮아!‘

바보인 건가 천사인 건가

아님 엄마를 그만큼 신뢰하는 건가.


나는 그때 그 상황에 없었어서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굳이 콕 집어 이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엄마에게 꽤나 놀란 사건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이 글을 엄마가 보면

나는 또 한소리 듣겠지만,

우리 아지를 추억하기 위해서는 한소리가 뭐냐

두소리 세 소리도 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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